교류의 시작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부터[알파고 시나씨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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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대학원 시절에 알게 된 한 선배가 필자에게 신기한 사연을 이야기해줬다. 이 선배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한 분이다.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 같은 미국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여성들이 졸업한 여자 학교다. 그렇다 보니 일부 아랍 기업인들도 딸들을 이 학교에 유학 보낸다고 그랬다. 이 선배처럼 각국에서 온 여성들이 많았던 학교였다는 것이다.

사연의 진짜 신기한 부분은 이 학교에 다닌 미국 현지 학생들의 태도에서 시작한다. 한 미국인 학생이 자꾸 한국인, 일본인, 중국계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너희 나라에 이렇게 높은 빌딩이 있니?” “너희, 미국에서 지하철 처음 봤지?” “너희, 스테이크가 무엇인지 모르지?” “너희 나라에 아직도 선거 없지? 다 군주나 독재자가 알아서 통치하는 거지?” 등등. 상대 나라의 경제력이나 민주주의 혹은 법치주의 수준을 비하하는 취지의 질문들을 수시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를 비롯한 아시아계 학생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한다. 상대가 이러한 질문을 단순히 아시아계 학생들을 놀리려고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고. 아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반무식함, 반순수함’으로 물어봤을 거라는 게 생각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아시아계 여학생들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본인들의 용돈을 모아서 그 질문을 던진 미국인 여학생에게 비용을 대줘가면서 아예 아시아로 여행을 시켜줘야겠다고…. 이렇게 시작된 여행. 친구들을 따라 아시아를 돌아다니던 그 미국인 여학생은 대도시들을 직접 보고 충격에 빠졌으며 두 번 다시 비하하는 질문을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단순히 친구들에게서 여행비용을 지원받은 것이 너무 미안해서나 고마워서 입을 닫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 사연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미국인 학생 같은 사례가 한국인들 사이에 최근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제정치를 주제로 해 주기적으로 라이브 방송을 한다. 최근에는 젊은층이 선호하는 트위치라는 플랫폼에도 진출했다.

트위치를 통해 좀더 젊은 10, 20대 시청자를 접하다 보니 댓글의 내용이 예전과는 다름을 감지했다. 파격적인 몇몇 댓글에는 충격도 좀 받았다. 이를테면 하루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관해 소개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이런 댓글이 눈에 띄었다.

“법치주의나 인권이 없는 구시대적인 나라인 사우디에 대해서 왜 알아야 되는지 모르겠어. 이 나라 사람들도 참 이해가 안 간다! 왜 아직도 이 따위의 민주주의 속에서 숨쉬고 있는 것인지….”

사우디의 법치주의 수준에 관한 편견에 대해 먼저 짚어보자. 2005년 세계은행의 세계거버넌스지수(WGI)에 따르면, 사우디의 법치주의 수준은 한국과 함께 50점과 75점 사이에 위치한 3급이다. 법치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물론 한국과 사우디의 차이가 크다. 그러나 한국 역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수준 모두 높은 나라가 아니었다. 피땀 흘려 싸운 선배들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의 흐름, 국제 정세에 따라 어제의 반인권 국가가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부국이 내일의 빈국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나라에 대해 단편적 선입견만 갖고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나라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자 하는 태도다. 사우디의 경우, 대한민국 석유 수입량의 30%가량을 공급하는 주요 교역국이다. 서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경제나 민주주의의 수준이 현재를 기준으로 우리보다 낮다고 해서 무턱대고 비하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교류#시작#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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