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한민족의 오래된 명절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실에서도 추석에는 차례에 해당하는 제사를 지내곤 했다. 다만 왕실에는 아무래도 국가 제사, 다른 중요한 제사가 많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조촐한 느낌이다. 추석에 추석 느낌 나는 기사가 없는 해가 대부분이다. 그때는 전 국민의 대이동도 없었고, 공휴일도 아니었다. “문소전에 가서 망제를 지냈다.” 이 정도가 전부이고, 바로 평소처럼 공무를 집행한다. 선왕에 대한 제사가 국가 공식 행사 느낌이라면 차례는 왕실 가족의 사적인 행사 같은 분위기를 준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인데, 임진왜란 7년 동안 추석의 모습은 어땠을까? 임진왜란 발발 첫해인 1592년 추석에 선조는 의주에 있었다. 전공자 포상, 범죄자 처형, 군사의 의복 문제, 중국군 군량 문제…. 추석은 언급도 없다. 다음 해 추석은 더 정신이 없다. 수복한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추석날에는 황해도 봉산에서 묵었다. 그래도 명절 같은 일이 있기는 했다. 왜군에게서 풀려난 왕자들과 해후해서 가족 상봉을 했다.
그 뒤로도 임진왜란 기간 동안 내내 추석의 일과는 똑같다. 가벼운 차례 같은 행사는 있었지만, 실록에서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전쟁이 끝난 후의 기록에도 추석 행사가 기록된 경우는 희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조 말년이 되면 추석에 왕세자가 문안했다고 하고, 그날은 아무 일과가 없다. 그런 걸 보면 임진왜란기의 추석이 좀 다르기는 했던 모양이다.
백성들의 추석은 어땠을까? 난중일기에도 추석의 감상은 없다. 이순신 장군도 공무, 전염병 걱정, 가족 걱정으로 바쁘다. 전란 중에는 양반들도 굶어 죽고, 비참한 생활을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 추석은 언감생심이었다.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귀성객이 넘친다고 한다. 3년 만에 상봉한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이 아니라 3년간의 전쟁이었다면 올해 추석은 어땠을까? 우리가 평화로운 명절과 해후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켜온 사람들, 지금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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