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가볍게 커피 한 잔 가능하실까요?” 퇴근길 소셜미디어 링크트인을 통해 받은 메시지다. 발신인은 모 기업의 인사 담당자. ‘커피 한 잔’의 목적은 이직 제안이다. 몇 년 전이라면 ‘어느 회사의 무슨 팀에서 어떤 경력을 가진 사람을 찾으니, 관심이 있으면 이력서를 보내라’는 공식 메일을 받았을 것이다. 요즘 이직 제안은 ‘티타임’이나 ‘커피 챗’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온다.
내 첫 티타임 제안은 꽤 유명한 스타트업 대표 A에게서 왔다.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일들이 많아서 만나고 싶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궁금했다. 주말 오후 텅 빈 A의 사무실, 그 만남에서 ‘멋진 일’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자리에 앉자마자 한 시간 동안 심층 면접에 가까운 질문 공세를 받았다. 지원 의사도 안 밝혔는데 평가를 받은 셈이었다. 무엇보다 ‘티타임’을 갖자고 하면서 커피도 차도 한 잔 내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종종 들어오는 티타임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올 초 용기를 내 두 번째 티타임을 가졌다. 평소 관심이 있던 업계의 B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젊은 임원과 만났다. 이번의 상대방도 첫 티타임과 같이 나를 평가하고 있었겠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이건 말 그대로의 티타임이었다. 나도 해당 회사와 직무에 대해 궁금했던 내용을 마음껏 물어보고 정보를 나누었다. 결과적으로 B사에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티타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B사는 커피를 사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요즘 회사들은 공식 채용 절차 대신 티타임을 제안할까? 후보자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티타임 제안 메시지에는 반드시 ‘가볍게’나 ‘편하게’라는 표현이 있다. 편한 분위기에서 격 없이 대화하면 더 솔직해질 테니 면접 자리에서 파악할 수 없는 장단점이 보인다. 격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려 환경을 바꾸는 면접은 20여 년 전에도 있었다. 합숙이나 등산 면접이라는 형태로. 티타임은 등산 면접의 변주라 할 수도 있겠다.
티타임의 현실적인 이유 중에서는 비용 절감도 있다. 대기업 인사팀장 C는 몇 년 전부터 마음에 드는 구직자를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난다. 사람을 대신 찾아주는 헤드헌터도 고용하지 않고 직접 찾는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 많은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고, 여러 지원자의 면접을 최소 두 번씩 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티타임을 제안받으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얼마나 관심이 있을 때 티타임에 응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원 의사가 없어도 업계의 분위기를 가늠하려 티타임에 모두 응한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티타임은 공식적인 면접이 아니다. 어느 한쪽에서 먼저 연락을 더 하기 전까지는 확실한 수락도 거절도 없고 합격도 불합격도 없다. 나의 이직 가능성이 나의 유동성 자산 현황처럼 출렁거리는 것, 이런 가변성도 티타임이 보여주는 시대정신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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