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했다. 미국 노동부가 13일 밝힌 8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3%로 시장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높았다. 고물가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한국과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13년 5개월 만에 1390원 선을 돌파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 것은 주택 임대, 의료 서비스, 신차 등 다양한 분야의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른 결과다. 고물가가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인플레이션은 유가 급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른 국제 유가가 8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물가 정점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번 물가 쇼크로 설득력을 잃게 됐다.
고물가에 따른 고환율 충격으로 국내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달러 빚이 많은 배터리·석유화학업계는 외화 표시 부채가 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반년 동안 연결 기준 달러 표시 부채가 8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자동차업계는 과거 환율 상승 시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매출은 별로 늘지 않고 원자재값 부담만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 수입물가와 기대인플레가 잇따라 하락하면서 조만간 위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런 기대와 달리 고물가 상황이 쉽게 진정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번 물가 쇼크다. 미국에서는 다음 주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에 그치지 않고 1%포인트 올리는 울트라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플레에 대해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예고하며 “빅스텝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는 등 여건이 바뀐 만큼 한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화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이어진 장기간의 ‘유동성 파티’를 정상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긴축의 시대를 금방 벗어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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