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03시 00분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2021년 5월 대구에서 50대 남성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39kg이었고, 범인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신고한 22세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거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 2000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는 삼촌이 대신 내주었지만, 생활비를 벌고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22세 청년의 몫이었다. 하루는 돈을 벌고 하루는 간병하는 일상이 이어졌지만 빚 독촉과 생활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인터넷, 전기, 가스, 식량이 차례로 끊겼다. 홀로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그 청년은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 청년) 간병 살인’이다.

실제 진료를 하다 보면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년이 부모 또는 조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오거나 병간호하는 일이 많다. 간병해줘서 고맙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 청년들이 독박 돌봄에 내몰리는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이들은 대개 어려운 가정 형편에 놓인 효자 효녀로 여겨지고 칭찬이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겨질 뿐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영 케어러가 몇 명인지 기본 통계조차 없다. 영국, 스웨덴,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 청소년 인구의 5∼8%를 영 케어러로 추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18만∼29만5000명 정도일 것이라 추산할 뿐이다. 돌봄을 사회와 공적 영역이 아닌, 가족과 사적 영역으로 전가해버린 국가 시스템은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극단적인 형태로 간병 살인 사건이 나면 그저 존속살해로 기소할 뿐이다.

물론 가족의 어려움은 함께 나눠야 하고 가족은 함께 돌보는 것이 맞다. 돈을 버는 어른을 대신해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젊은이가 느끼는 간병 부담은 어른들이 느끼는 부담에 비해 크다. 과도한 간병은 때로는 영 케어러에게 신체적, 정신적 부담과 고통을 부과하기도 한다. 교육 훈련의 기회를 제약함으로써 미래 고용 및 자립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들은 아직 인격이 미숙한 상태여서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자책하기 쉽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쉽게 무너진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집안일도 돌봄도 모두 미숙하고, 정보를 얻거나 도움을 구하는 일에도 미숙하다. 가족이니까 서로 도와야 한다는 규범도 소중하지만, 그 역할 부담이 청년의 성장 단계에 적절한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영 케어러를 그저 집안 형편 어려운 효자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의 간병은 마냥 당연하지 않다. 이들 역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가족이고, 우리 사회의 젊은 구성원 아니던가.

#영 케어러#사회적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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