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僞裝·Camouflage) [고양이 눈썹 No.36]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7일 15시 00분


2021년 9월
2021년 9월


▽‘위장(僞裝)’을 뜻하는 ‘Camouflage(불어로 까무플라쥬, 영어로 카모플라지)’는 탄생한지 100년가량 된 신조어입니다. ‘Camoufler(까무플레르)’라는 절도범죄자(도둑)들의 은어에서 파생된 단어인데요, ‘얼굴을 가리다’ ‘얼굴에 연기를 피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머리와 목을 가리는 머플러(muffler)와 어원이 같지 않을까요?

멋진 맵시를 자랑했던 나폴레옹 부대의 보병
멋진 맵시를 자랑했던 나폴레옹 부대의 보병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전쟁은 한낮에 평원에서 양군 주력부대가 대결을 벌이는 전투가 많아 군복이 화려했습니다. 사기진작에 도움도 되고, 대오를 유지하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포격술이 좋아지면서 화려한 군복은 표적이 되기 딱 좋았습니다. 또 게릴라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고요.
보불 전쟁 때 프로이센군에게 패배하면서 위장의 중요성에 눈을 뜬 프랑스 군대가 1차 대전을 거치며 ‘까무플라쥬’를 군사용어로 정착시켰다고 합니다. 공군 조종사의 눈을 피하면서도 참호전에서 유리했습니다. 이후 생태학자들이 보호색 동물에 대한 연구에 이 용어를 차용하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사진출처 해외 의류쇼핑몰
사진출처 해외 의류쇼핑몰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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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카모플라지 패션’이라며 군인의 위장복 무늬를 옷감으로 쓰는 옷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현충일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위장 무늬로 유니폼을 특별 제작해 입습니다.
위장복 무늬가 패션의 하나로 정착한 데에는 1987년 데뷔한 미국 흑인 힙합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공이 컸습니다. 그들은 흑백 위장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채로 무대에 섰습니다. 인종 간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던 1980년대. 자신들의 무대가 바로 전쟁터라는 것을 상징했죠.
사진기자들도 이 위장복 무늬를 착용할 때가 있습니다. 철새 등 생태 사진을 찍는 분들이 특히 그런데요, 위장복은 물론 위장텐트, 위장막 등 거의 군인 저격수 수준으로 숨어 영상 촬영을 합니다. 동물들을 속이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치약이나 비누 냄새에 민감한 동물들을 위해 며칠씩 씻지도 않고 한 자리에 머물기도 합니다.

2019년 4월
2019년 4월


▽“한 연구자가 호숫가의 암수 오리 비율을 계산했더니 매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많아 숫자가 오히려 적어야 할’ 수오리가 암오리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았던 것이다…(중략)…개체수가 암컷보다 훨씬 많은 수컷이 암컷의 눈에 띄어 짝짓기를 하려면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 생태학자 요제프 H. 라이히홀프의 책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2012년) 중에서

위장과 반대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수컷 새들은 암컷에 비해 깃털이 화려한 경우죠. 공작도 수컷보다 암컷이 더 많고 더 오래 사는데 이유는 덩치가 커서라고 합니다. 영양분 비축에 유리한데다 천적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암컷 눈에 띄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위장이 유리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주네요.

자연계에서 자신이 ‘독이 있다’고 과시하는 생명들은 굳이 위장을 안 합니다. 무대의상은 화려합니다. 눈에 띄어야 하니까요. 강제로 도드라지게 하기도 합니다. 옛날 군복 색깔이 화려한 이유는 ‘탈영 방지’라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한때 우리 육군 활동복도 주황색이었지요. 군복을 입지 않는 여가 시간에 탈영하는 경우가 많아 발견을 쉽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교도소 수감자 옷도 오렌지색이 대부분입니다.

2022년 5월
2022년 5월


▽‘위장된 축복 (a blessing in disguise)’.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해외 저널에서 이 표현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환위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체질 개선에 성공하고 한 단계 질적 성장을 했다는 의미였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숱한 한국인은 안중에도 없는 경제학자에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무척 불쾌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위장된 축복이 있다면 ‘위장된 재앙’도 있기 때문이죠. 축복이 재앙으로 위장해 오고, 재앙은 축복으로 위장해 온다는 주장 만약 사실이라면…? 축복을 ‘+(플러스)’로, 시련을 ‘-(마이너스)’로 가정하고, 이 둘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다 합쳐 ‘0’에 수렴된다는 셈이 나옵니다. 별 것 없네요.
숙명처럼 오는 무언가가 그 과정과 결과를 숨기고 싶다면? 우연인 척 위장해서 오겠지요. 역설적입니다.

이래서 동양의 옛 현인들은 이를 이미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로 알렸나 봅니다. 또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로 위안을 해주기도 합니다. “너무 좋다고 우쭐대지 말고, 잘 안 풀린다고 너무 기죽지도 마라”라는 말도 이런 맥락일 듯 합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꾸준하게, 지치지 말고 해야 하나 봅니다. 결과는 운과 하늘에 맡겨야겠지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도 오랜 경험에 따른 지혜의 언어입니다. 영어 속담에도 ‘Man proposes, God disposes’가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린 분들께는 박수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지인께는 밥 한끼 모시며 응원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2022년 6월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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