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소모적인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어제 일본 언론에선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극우매체는 일본 정부가 정식 회담을 보류하는 쪽으로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개최 계획에 변동이 없다”며 시간과 장소는 이미 조율을 마무리했고 의제 등 세부 조율만이 남았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이 오랜 갈등을 끝내고 관계 복원의 전기를 마련할 양자 회담을 2년 10개월 만에 갖는 만큼 양국이 그 형식이나 성격 규정에 민감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한일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수준의 만남이나 대화를 놓고도 조우니 면담이니, 회담이니 협의니 설명회니 실랑이를 벌여온 터다. 하지만 한일 관계 전환을 상징하는 만남이 될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매끄럽지 못한 잡음을 노출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상 정상회담 개최는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15일 윤 대통령의 유엔 일정을 발표하면서 “한일 회담은 일찌감치 합의해 놓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30분 남짓 얼굴을 마주 보고 진행하는 회담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합의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고, 회담 개최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진하게 풍기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일본도 정식이든 약식이든 회담 자체를 부인하진 않고 있지만, 이런 논란 속에 한국은 조급하게 매달리고, 일본은 아쉬울 게 없다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이번 회담은 그 형식이 어떻든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놓고도 한일 간엔 이미 내밀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고 대통령실은 전한다. 결국 정상 차원의 결단과 합의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외교적 노력의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의 관리도 중요하다. 어그러졌던 한일 합의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조급한 낙관도, 여론 눈치 보기도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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