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 받은 판결 15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사법당국으로부터 접근 및 연락금지 명령을 받은 가해자 57명 중 3명만 범행을 멈춘 것으로 밝혀졌다. 가해자의 5.3%만 피해자에게서 100m 이내로 접근하지 않거나 전화 걸기나 문자 보내기를 중단한 것이다. 금지 명령을 어기고 경찰이 떠난 뒤 30분 만에 피해자를 다시 찾아가거나 고소 취하를 문자로 협박한 일도 있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이 스토킹 범죄의 특징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가해자는 그대로 두고, 신변보호 요청을 한 일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위급 상황 시 경찰을 호출하게 하고 있다. 스마트워치 오류나 경찰의 늑장 출동으로 피해자가 보복 범죄를 당하는 허점이 드러났다. 미국과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한다.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는 구속영장이 기각된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가해자 추적 장치 도입을 더 미룰 이유가 없다.
신당역 스토킹 살해범은 휴가 중인 직원이라고 속여 서울교통공사의 내부망에 접속해 동료 직원이었던 피해자의 근무지와 근무 일정 등 구체적인 동선을 파악했다. 사내 회계프로그램으로 집 주소까지 알아냈다고 한다.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가 기각된 살해범은 지난해 10월 직위해제됐는데,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살해범의 개인정보 열람 권한이 박탈되지 않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작년 12월 구청 공무원이 흥신소에 개인정보를 팔아넘겨 신변보호를 받던 일가족이 살해됐지만 해당 구청은 과태료 360만 원만 냈다. 범죄에 악용되는 개인정보 유출을 방치한 공공기관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22년 논의 끝에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를 엄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이 시행됐는데도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경로로 개인정보를 입수해 피해자의 근무지나 거주지로 찾아올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는 현실이다. 사후 처벌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예방책이 없으면 피해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설령 나쁜 마음을 먹더라도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촘촘한 대책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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