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쌀 수매 의무화, 기초연금 인상 등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한 입법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169석 다수 의석으로 ‘민생입법’을 밀어붙여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정부 여당과 차별화를 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재정당국, 여당과 협의 없이 야당이 단독으로 입법화하는 정책들이 필요한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과잉 생산된 쌀 전량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단독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초과 생산되는 쌀을 사서 보관하는 데 매년 1조 원 넘는 예산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8월부터 연말까지 국민이 쓴 버스·지하철 요금 절반을 돌려주겠다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은 최대 4조6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국회 예산정책처가 전망했다.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올리는 법안은 2030년 한 해에만 12조 원 넘는 예산이 더 든다.
헌법은 정부에 예산 편성권과 집행권을, 국회에는 심의권과 확정권을 나눠서 부여하고 있다. 국회는 예산안의 세부 항목을 늘릴 때에도 일일이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주로 여당이 예산 증액을, 야당은 삭감을 요구하면서 견제가 이뤄졌다. 지금은 거대 야당이 많은 예산이 나갈 선심입법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나라살림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는 것도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사전에 이를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국회의 입법으로 재정 리스크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페이 고 원칙’을 도입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버는 만큼 쓴다(Pay as you go)’는 뜻으로 예산이 들어갈 법안을 내놓을 때 지출규모가 비슷한 다른 법을 폐지하는 등 재원 마련 방법을 함께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 의원 입법이 재정상황에 미칠 영향을 의무적으로 평가하는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정부 여당의 세금 낭비를 감시해야 할 야당이 재정 축내기에 앞장서는 상황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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