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은]“팬데믹은 끝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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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정말로 끝난 것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을 선언한 이후 외신이 쏟아내고 있는 질문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상당수 현지 언론의 판단은 “아니요”. 미국에서는 여전히 하루 평균 2만 명 넘는 신규 확진자에 400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4300명이 새로 입원한다. 미국 보건부가 석 달 단위로 연장해온 공중보건 비상사태 국면도 유지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팬데믹은 끝났다”라고 불쑥 언급한 곳은 디트로이트 모터쇼 방문을 계기로 진행한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였다. 북미 최대 규모의 모터쇼에서 마스크 쓴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확신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발언은 당장 백악관 당국자들부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의회에 추가 요청해 놓은 224억 달러의 예산을 받아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백신 접종 캠페인도 동력이 떨어질 판이다.

▷야당인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 공중보건 비상사태부터 해제하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해제할 경우 1500만 명의 취약계층이 백신 접종과 치료 시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 내 전문가들도 우려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허튼소리”, “역겨운 발언”, “중간선거를 의식한 보건 포퓰리즘”이라는 날 선 반응까지 나왔다. 모더나와 화이자 등 백신업체들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90억 달러(약 12조5000억 원) 넘게 날아가 버렸다. 후폭풍이 한동안 이어질 조짐이다.

▷2년 반 동안 지속돼온 팬데믹이 종식 단계로 가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끝이 보인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은 전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고, 자가 격리 규정도 대폭 완화했다. 스위스에서는 코로나19에 걸려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회의에도 참석한다. 그렇다고 ‘종식’을 공식 선언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백신과 치료제에 힘입어 팬데믹 양상을 바꿔 놓기는 했지만 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가별, 지역별 의료체계와 대응 상황도 천차만별이다.

▷마스크조차 벗지 못하는 한국에 코로나 종식 논란은 일러도 한참 이르다. 실내 마스크 착용 규정을 풀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아직 단호하다. 독감의 5배에 이르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력(R0)이 더 낮아지고, 위중증 이완율 등 수치가 더 떨어져야 방역 완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겨울 독감과 코로나가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 가능성도 남아 있다. 결국 과학적인 데이터와 지표에 근거해서 차근차근 연착륙을 향해 나아가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팬데믹#종식 단계#트윈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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