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고민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가족이 놀이동산을 갔다. 이 아이는 가족이 함께 놀러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놀이 기구를 타는 것은 좀 싫어한다. 솔직히 무섭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와 동생은 놀이 기구 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놀이동산만 가면 “야, 동생은 저렇게 잘 타잖아. 뭐가 무섭다고 그래. 용기를 내봐”라는 말을 듣게 된단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동생은 은근히 의기양양해져서 자신을 쳐다보는데 그것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에게 서운하고, 남들은 다 재미있다고 타는 놀이 기구를 잘 타지 못하는 용기 없는 자신도 싫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용기’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용기를 내봐. 에이, 바보! 그런 것도 못 타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용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아이가 놀이 기구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더 안전해야 시도를 하는 기질이나 성향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루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일단 해볼까’ 하고 덤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돼야만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 것을 ‘용기가 있다,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가 이런 이유로 놀이 기구를 타기 싫어한다면, 부모가 좀 교대를 하면 된다. 한 사람은 놀이 기구를 타기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타고, 나머지 한 사람은 놀이 기구를 타기 싫어하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꼭 가족 모두가 같은 활동에 참여해야만 그 나들이가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성향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놀이 기구를 타지 않는 아이에게는 “그럼, 너는 우리가 타는 동안 뭐 할래?”라고 편하게 물어봐 주어야 한다. 그냥 구경하고 있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흔쾌히 말해준다. 다른 가족이 타는 모습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를 먹으면서 기분 좋게 다른 가족을 기다릴 수도 있다. 아이가 그 시간을 편안히 보내면서 사람들이 그 놀이 기구를 즐거워하면서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금세는 아니지만 천천히 ‘나도 타도 되나?’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된다. 나름대로 그 상황이 파악이 돼서, 그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아이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말해주는 것보다 자기가 그 상황을 편안하게 경험해봐야 한다. 자기가 경험을 해서 ‘아, 이것은 이렇게 다루어야 되는 거구나’를 알았을 때 불안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모 눈에는 아이가 겁이 많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용기를 내도록 자극하기 위해 아이에게 ‘겁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자아상에 ‘겁쟁이’를 넣어버린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된다.
사실 부모가 “겁내지 마. 용기를 내봐”라고 하지 않아도, 주변을 보고 아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부모는 그럴 때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오히려 가르쳐 줘야 하는 사람이다. 용기란 불의 앞에서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국가를 지켰던 그 모습들이 용기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지켜가는 것이 ‘용기’이다. 그렇게 설명해 줘야 한다. 더불어 아이가 놀이 기구가 무서워서 타기 싫다고 할 때 “놀이 기구 안 타도 괜찮아. 오늘 우리 가족이 즐겁게 지내면 되는 거야. 네가 밑에서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 먹는 것이 즐거우면, 그것도 좋은 거야”라고 말해줘야 한다. 아이가 혼자만 안 타려고 한다고 ‘너 혼자 안 타는 것은 네가 우리 가족의 즐거운 분위기를 깨는 것이다’식의 메시지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줬더니, 아이는 그래도 아빠가 자꾸 타 보라고 하면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오늘 여기 즐겁게 놀려고 온 건데요, 저는 아이스크림 먹고 구경하는 지금도 즐거워요. 재밌게 타고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가르쳐줬다. 원장님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놀이 기구는 잘 안 타는 편이라고 살짝 귀띔도 해줬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는 위험한 것 같은데 누군가 용기를 운운하면서 자꾸 해 보라고 하면, 원장님이 설명해준 용기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모르는군’이라고 속으로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에게 용기와 함께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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