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新聞) 총리”[횡설수설/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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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몰랐고, 신문을 보고 알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논란이 된 878억 원 영빈관 신축 계획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식물 총리를 넘어 신문 총리, 변명 총리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공세를 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도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이냐. 중요한 영빈관 관련 예산을 몰랐다고 말하는 거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 답변이 오죽 궁색했으면 여당 의원까지 비판에 나섰을까 싶다.

▷다음 날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한 총리에게 “8월 중순 대통령 헬기가 나무에 부딪혀 꼬리 날개가 손상된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 총리는 “신문 보고 알았다”고 답변했으나 이 사실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었다.

▷통상 대통령과 총리는 매주 월요일 오찬을 겸한 주례회동을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주례회동만 벌써 7차례나 했다. 이 자리에서 국정 전반에 걸쳐 현안이나 정책 논의가 이뤄진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례적으로 만나는 한 총리가 대통령실의 민감한 영빈관 신축 계획이나 헬기 사고 등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더욱이 영빈관 정부 예산을 통과시킨 지난달 말 국무회의는 한 총리가 직접 주재했으니 더 챙겨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빈관 예산은 한 총리가 정말 몰랐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대통령실 수석급 고위 인사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영빈관 신축 계획은 극히 소수의 참모들과 경호처 인사들이 밀실에서 논의한 뒤 정부 예산안에 전격 반영시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영빈관 신축 논의 과정에서 한 총리 ‘패싱’이 이뤄졌다면 한 총리가 “나는 몰랐다”며 ‘신문 총리’ 비판을 감수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총리는 명목상 ‘정부 2인자’이지만 ‘2인자’에 걸맞은 권한이 거의 없다. 윤 정부에선 장관 추천권을 행사하는 책임총리제를 강조했지만 한 총리가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할 만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나라 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하는 그림자 역할을 많이 했다.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는 행사에 대신 참석하는 ‘의전 총리’, 대통령을 대신해서 연설문이나 메시지를 읽는 ‘대독(代讀) 총리’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껄끄러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총대를 멘 뒤 책임지고 물러나는 ‘방탄 총리’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 총리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대통령 대신 야당 공세의 뭇매를 맞는 ‘신문 총리’ 유형도 추가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신문 총리#그림자 역할#의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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