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이슥하도록 섬돌 위를 서성이는 여인, 이슬이 버선에까지 스미는 걸 느끼고서야 방 안으로 돌아온다. 수정 주렴을 드리웠지만 눈길은 여전히 저 영롱한 가을 달을 놓치지 못한다. 섬돌과 방 안 사이를 오가는 짧은 동선, 그리고 주렴 내리기와 달 바라기라는 단순한 몸짓이지만 시인의 섬세한 관찰을 거치면서 여인의 처지와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밤이슬 맞아가며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여인은 원망과 실망을 안은 채 방으로 들어와 주렴을 내린다. 자신을 저 적막 그득한 외부 공간으로부터 애써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슬과 가을밤의 한기를 차단하고, 견디기 힘든 오랜 배회와 기다림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정 주렴이 저리도 반들거리고 투명하거늘 어떻게 자신과 외부를 격리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한시도 내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저 영롱한 달은 그리움에 애간장 졸이는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 불면과 회한을 끝없이 선동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이 시는 이백이 평소 흠모했던 육조시대 사조(謝조)의 ‘옥계원’을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저녁 무렵 전각에는 주렴이 내려지고, 반딧불이는 날았다 쉬기를 반복하네. 긴긴밤 비단옷 짓고 있는데, 그대 그리는 이 마음 언제면 다할는지’가 그것이다. 자잘한 일상에 얽매이지 않는 호탕한 기질의 이백과는 도무지 어울릴 성싶지 않은 분위기며 필치인데, ‘옥계원’은 ‘여인의 원한 혹은 그리움’을 주제로 시에 상투적으로 붙였기 때문에 한대 이후에 뭇 시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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