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송 길들이기’ 도구로 전락한 재승인 규제 왜 방치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4일 00시 00분


방송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방송의 독립성을 해치는 정부의 재승인 규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방송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제도 개선 정책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인허가권으로 방송 운영에 개입하고 행정력을 낭비하게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현재 종편과 보도채널은 3∼5년, 홈쇼핑 채널과 인터넷TV 사업자는 5∼7년마다 재승인 심사를 받는다. 같은 유료 방송인데 뚜렷한 기준도 없이 재허가 유효 기간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방송사로선 재허가 유효 기간을 예측할 수 없어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방대한 심사 자료를 준비하느라 콘텐츠 개발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빼앗기고 있다. 게다가 심사 항목의 3분의 2가 심사위원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될 수 있는 정성 평가다. 정부가 재승인 권한을 방송 통제용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재량으로 부과하는 재승인 조건이 갈수록 불어나는 실태도 공개됐다. 2010년 43개 방송사를 심사하며 제시한 재승인 조건은 12건이었는데 2020년엔 심사 대상 방송사가 28개로 줄었음에도 조건은 32건으로 급증했다. 이 중 상당수가 명확하지 않거나 법적 근거가 없고 일부는 방송사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고 한다. 재승인 조건 부과 권한마저 방송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현행 재승인 제도는 방송시장이 지상파 방송사 위주였던 2000년 도입됐다. 그동안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재승인 규제는 22년째 거의 그대로다. 지상파의 심사 기준을 유료 방송에도 획일적으로 적용해 전체 방송 산업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도 문제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대대적인 제도 정비로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 유료방송의 재허가 유효 기간을 7년으로 늘리고, 매체 특성에 따라 심사 기준을 달리하며, 모호한 조건 부과 관행을 없애 재승인 심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방송 길들이기#재승인#규제#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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