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외교를 마치고 그제 귀국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순방이었다. 귀국길 기내간담회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착잡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디서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되돌아보고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의 “국회에서 이 ××들이” “×팔려 어떡하나” 등 막말 논란은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실 해명대로 발언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라면 169석 야당을 향해 막말을 한 셈이 되는데도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 입에서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나온 게 없다. 평소 야당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봐도 된다는 뜻인가.
사적으로 한 발언이라 해도 방송 카메라에 잡힌 만큼 더 이상 ‘혼잣말’ ‘사적 발언’이 아니다. 이미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됐다. “외교 참사” 운운하는 야당 비판에 발끈하기 전에 발언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깔끔하게 사과하는 게 옳다. 여당 내에서도 “조작, 가짜뉴스”라며 대통령을 엄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제라도 깨끗이 사과하고 수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순방을 앞두고 국민 기대를 높였던 건 대통령실이다. “흔쾌히 합의됐다”던 한일 정상회담은 ‘저자세’ 논란만 불렀고, 한미 정상회담은 짧은 환담에 그쳤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상대와의 꼼꼼한 일정 조율, 현안 조율 없이 국내 홍보에 급급해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이번 순방의 사전 준비 단계부터 철저히 복기해 책임 소재를 가릴 필요가 있다.
귀국한 윤 대통령 앞에는 숱한 국내 현안이 쌓여 있다. 1400원을 넘은 원-달러 환율,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국정 곳곳이 지뢰밭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정 수행 지지율은 다시 28%로 내려앉았다. 막말 논란 등을 질질 끌고 있을 여유가 없다. 좀 더 겸허하고 절제된 언행과 태도로 국정 의지를 다잡고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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