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 복원은 성과, 외교참모들 조급증에 구겨진 체면
日측 “한국이 일본에 빚졌다”… 강제징용, 일본 양보는 더 멀어져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하던 후배로부터 갑작스러운 e메일을 받은 일이 있다. 꼭 읽어야 하는 영어 논문에 “일본을 알려면 ‘kashi’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앞뒤 문맥을 아무리 뜯어봐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kashi’는 일본어의 ‘貸し(가시·빌려줌)’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뒤에 ‘만든다’가 따라붙어서 남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시(貸し)’를 만든 사람은 나중에 돌려받겠다는 의지나 기대를 갖고 있고, 상대는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는 점에서 ‘통 크게 도와주고 통 크게 잊어버리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답을 했었다. ‘가시(貸し)’는 일본인들의 사적인 대인관계뿐 아니라 정치·외교 문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일본에서는 내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에 대한 국장이 열린다. 분신을 하며 항의를 하는 사람이 나올 만큼 반대 여론이 거세다. 그 바람에 두어 달 전만 해도 60%대이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지지율이 20%대까지 곤두박질쳤을 정도다. 그런데도 기시다 총리가 아베 국장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시(貸し)’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카키타 고지 히토쓰바시대 교수(정치학)가 내놓은 분석이다. 여당인 자민당 안에서 입지가 좁은 기시다 총리가 최대 파벌인 아베파에 ‘정치적 가시(貸し)’를 만들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 외교의 득실을 계산할 때도 ‘가시(貸し)’는 중요한 잣대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한일 정상 외교에서 적잖은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년 9개월간이나 끊어져 있던 두 나라 정상 간의 소통 채널을 다시 복원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있다. 일본 측 발표문을 보면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데 일치했다”는 표현이 있다. ‘미래지향’은 일본이 2019년판 외교청서에 일부러 삭제했던 표현이다.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공감대는 일단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런 성과가 있었으니 앞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우리는 일본의 전향적 양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22일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기사다. 신문이 전한 일본 측 참석자의 발언은 이렇다. “아무 성과도 없는 중에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이쪽은 안 만나도 좋은데도 불구하고 만났다. 일본은 한국에 ‘가시(貸し)’를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일본인들이 ‘가시(貸し)’를 만들었다고 할 때는 그 대가를 돌려받겠다는 의지나 기대를 담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양보를 한국에 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이 참석자의 발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당연히 다음에는 (한국 측이) 성과나 진전을 가지고 오겠죠.”
강제징용 문제의 근원에는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를 일본의 ‘적반하장’식 태도가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외교 참모들의 조급증과 한건주의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정상 회동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보면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달 15일 “한일 정상회담이 흔쾌히 합의가 됐다”고 설익은 발표를 한 것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본 측이 합의 사실을 부인하고 자국 언론을 통해 불쾌감을 공공연히 나타내면서 한일 정상 회동은 우리가 ‘통사정’을 해서 만나는 형식이 됐다. 그런 데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주최하던 행사장까지 찾아가 만나는 대목에서는 자존심도 체면도 없게 됐다. 양국 국기도 내걸리지 않은 채 이뤄진 만남에 대해 ‘한일 정상 약식 회담’이라며 ‘회담’이라는 표현에 집착한 것도 ‘간담’이라고 한 일본과 대비되면서 스타일을 구기는 결과가 됐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만남에 앞서 가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사·경제·안보 등 양국의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 구상을 밝혔다. 이런 식의 ‘통 큰’ 외교는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과 대차(貸借)대조표를 따지고, 실무 차원에서 차곡차곡 논의를 쌓아 윗선으로 올라가는 상향식 일본 외교에 뒤통수를 맞기 십상이다. 비싼 수업료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