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의 거장’으로 통하는 김인중 신부(82)가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초빙 석학교수로 임명된 지 50여 일 지났다. 이 학교 학술문화관 내 천창(天窓)을 53개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하고 있는 김 신부가 새하얀 수사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면서 “그동안 교정 내 연못의 거위들이 KAIST의 상징으로 통했는데 이제는 김 신부로 바뀐 것 같다”는 말도 들려온다.
김 신부는 얼마 전 이 학교 주요 보직 교수들의 공부 모임에서 특강을 했다. 그는 인생에 영향을 미친 두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역경을 극복한 과정을 소개했다. “과학과 예술은 신이 준 쌍둥이 같은 선물입니다. 창의적으로 발상하는 과정은 과학이나 예술이나 다를 바 없지요. 예술가들이 자신의 밑바닥을 만나 발전하듯 과학자들도 그렇게 진보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도미니크수도회 소속 신부다. ‘수태고지’ 그림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 프라 안젤리코가 이 수도회 수도사였다. 사제와 화가라는 두 개의 길을 프로로 가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다. 묵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다.
최근 만난 김 신부는 찰리 채플린 평전을 읽고 있다고 했다. 가난과 싸우며 온갖 허드렛일을 했던 채플린의 어린 시절은 1969년 무일푼으로 유학길에 올라 동물원 야간경비 등을 하며 신학을 공부했던 김 신부의 젊은 날과 닮았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왔지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미술 교육은 ‘잘 그리는’ 테크닉 중심이었고 그런 점에서 그는 꼴찌였다. ‘예술의 목적이 빨리 잘 그리는 것일까. 그림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질 수는 없을까.’ 그는 납선 사이에 색 유리를 끼우는 기존의 방식을 내던지고 성서의 주요 장면도 그리지 않는다. 유리 위에 추상화를 그려 780도 열에 구워낸 그의 작품은 ‘깊은 고민이 이끌어낸 해방’이다.
50년 가까이 프랑스에 살다가 한국에 온 그는 KAIST 학생들의 이런저런 아픔을 본다. 어려서부터 무한 경쟁에 시달려온 학생들이 엘리트 집단 속에서 패배감을 느끼며 흔들리는 모습이다. 보석 같은 인재들이 정작 스스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길을 잃곤 한다. 학생뿐 아니다. 앞만 보고 달려와 그 분야의 1인자가 됐지만 마음이 허전한 교수들도 있다.
최근 KAIST의 몇몇 교수가 “신부님 만나 은혜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 신부에 대한 면담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그래서 학교 측은 앞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학술문화관 1층에 있는 김 신부의 작업실을 교내 구성원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김 신부는 이 시간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을 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용기와 경각심을 함께 주고 싶어요. 새로움을 찾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가짜 안정’에 머무르면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없고 오만에 빠집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첫째가 어느 순간 꼴찌가 될 수 있고, 꼴찌도 첫째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어요.” 미래 인재들이 수채화처럼 맑은 빛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기를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