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외상을 입을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기형인들은 애초에 외상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그들은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들이다.”
―다이앤 아버스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중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순간 멈춰 섰다. 할머니는 한 손에는 우산을, 나머지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으셨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좌우로 꽤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지팡이만 들고 다니셨겠지만 그날은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우산까지 들고 나왔던 것이다. 불편한 몸을 우산과 지팡이에 의지해 할머니는 지하철역 입구를 향해 힘겹지만 씩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전에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동을 받았다.
미국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1923∼1971)의 사진에는 미국의 다양한 주변인들이 담겨 있다. 장애를 지닌 사람, 10대 부부, 나체주의자 가족, 얼굴에 문신을 한 광대…. 그가 찍은 범상치 않은 인물들은 보는 사람들을 묘하게 긴장시킨다. 그러나 찬찬히 바라보면 사진 속 인물들은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삶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진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의 기준이 더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익숙함 속에서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의 실체는 과연 얼마나 견고한가’.
아버스의 사진 속에서 마주친 인물들이 그러하듯,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할머니도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한번쯤 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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