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본질에 집중할 때[기고/류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6일 03시 00분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국민연금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있다. 문재인 정부 말 추진된 수탁자책임활동지침 개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지침 개정의 핵심은 대표소송 제기 결정권을 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넘기는 것이다. 수책위는 국민연금법상 정책 최고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안건을 사전 검토·심의하는 자문기구에 불과하다. 이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외부인사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그 발상 자체가 매우 비상식적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이런 논란을 지켜봐 온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져야 할 기금이 정치적 논리에 동원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 경총이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수탁자로서 가장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과제로 ‘순수 투자자로서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가 36.2%로 가장 많았던 반면, ‘투자대상 기업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7.7%에 불과했다.

국민이 바라는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결국 안정적 장기 수익 증대를 목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은 더욱더 그렇다. 다른 글로벌 공적 연기금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연금법은 ‘수익성’을 기금운용의 유일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활동이 이러한 원칙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표소송 등을 놓고 지침 개정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익성 원칙은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수책위를 검토·심의기구로 확정한 지난해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기존 지침에 기초해 의결권 행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수책위에 의존해 왔다. 수책위의 전문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수책위의 구성 자체가 각각의 이해단체 추천으로 이루어진 점은 분명한 한계다. 또한 의결권 행사 원칙에 대한 세부 기준을 나열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분할, 합병, 이사 선임과 같은 주요 안건에 대해 기업 측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 있는 보건복지부는 조속히 수책위에 부여된 결정 권한을 법 개정에 맞도록 회수해 위법성을 해소하고, 기금운용본부가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자체 수행하도록 전면적 지침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도 구체적 사안에 대한 자신들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외부에 맡기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다시 한번 중요한 변곡점에 있다.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운영 원칙, 의사결정의 주체와 기준 등을 안정적 장기 수익 증대라는 기금운용 본령에 맞춰 바로잡아야 한다. 이참에 투자·금융 전문가로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갖추어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소될 일이다. 새 정부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국민연금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국민연금#본질#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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