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연속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속화한 ‘킹 달러’ 광풍이 세계 경제를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주 ‘검은 월요일’에 1430원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은 어제 장 중 1440원 선이 무너졌고 당장이라도 1450원까지 돌파할 기세다. 환차손을 피하려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빨라지면서 어제 한국 증시는 다시 ‘검은 수요일’을 맞았다. 이틀 전 3% 폭락했던 코스피는 2,200 선을 맥없이 내주면서 또 2.45% 급락했다.
문제는 이번 충격이 단기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에서 촉발된 파운드화 폭락 사태에 이어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예측할 수 없는 러시아의 대응, ‘제로(0) 코로나’ 정책과 미국 견제로 인한 중국의 성장 둔화 등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환율 방어와 무역적자로 보유 외환이 바닥난 아시아 신흥국들의 ‘제2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 원화도 변동에 취약한 화폐로 꼽히고 있다.
급등한 환율은 물가를 끌어올려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집값, 주가 하락으로 재산이 줄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역(逆)자산효과’로 내수가 얼어붙는다. 환율 급등, 경기침체 가능성 때문에 대기업들마저 투자를 주저한다면 경기는 더욱 빠르게 냉각될 게 뻔하다. 세계 경제도, 한국 경제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비상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등 끝없는 정쟁의 수렁에 빠져 있다. 대통령실과 여야가 ‘끝장을 보자’는 식의 이전투구를 벌이느라 날을 지새운다. ‘10대 민생입법’ ‘7대 민생입법’ 등 민생 경쟁에 나섰다고 하지만 지지층을 겨냥한 행보로 보일 뿐이다, 10월 새 정부의 첫 국정감사도 ‘정쟁 국감’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정쟁은 늘 있어 왔지만 작금의 상황은 말 그대로 ‘전쟁’ 수준이다. 겉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소모적 다툼과 발목잡기에만 골몰한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등에 대응해 초당적 해법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젠 협치를 주문하기도 지칠 정도다. 지금이 이럴 땐가. 우선 윤 대통령은 비속어 논란으로 불거진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야당에 손을 내밀길 바란다. 더불어민주당도 해임건의안 단독 표결이란 무리수를 접고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현안들을 챙겨야 한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속히 마주 앉아 국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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