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망토를 휘날리며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이 장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그린 가장 유명한 초상화다.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렸다. 그런데 의아하지 않은가. 나폴레옹이 정말 저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전장에 나갔던 걸까?
나폴레옹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출세한 군인이자 전쟁 영웅이다. 코르시카섬 출신인 그는 16세에 입대해 20대에 장군이 됐고, 30세에 제1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 그림은 1800년 6월 나폴레옹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 마렝고 평원에서 오스트리아군에 승리한 직후에 그려졌다.
다비드는 원래 수많은 초안과 습작 후 초상화를 그렸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참을성 없는 나폴레옹이 화가 앞에 앉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외모보다는 특징을 표현하라고 요구했다. 신체적 유사성이 아니라 이상화된 이미지를 그리라는 의미였다.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장면도 나폴레옹이 선택했다. 다비드는 가로 2m가 넘는 커다란 화면 안에 이전에 그렸던 나폴레옹의 흉상 스케치를 참조해 머리부터 그려 나갔고, 자신의 아들을 사다리 위에 앉혀 승마 포즈를 취하게 했다. 실제로는 지구력이 강한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지만, 백마로 대체했다.
그림 속 장군은 멋진 제복과 이각모를 착용한 채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고 있다. 얼굴은 화면 밖 관객을 향하고 오른손은 산꼭대기를 향해 뻗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황금망토는 백마를 채찍질하며 재촉하는 듯하다. 하늘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산세는 험하지만 멀리서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이 줄지어 산으로 향하고 있다. 그의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해서 권력자가 보여주고 싶은 이상화된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석 점을 추가로 주문했고, 화가는 자신의 소장용까지 총 다섯 점을 제작했다. 그림이 예언이 된 걸까. 불가능은 없다는 걸 증명하듯, 3년 후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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