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의 준중형차 코롤라는 1966년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50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포드의 대량 생산으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자동차 산업에서는 코롤라 같은 베스트 셀링 모델이 여럿 존재한다. 포드 F시리즈, 폭스바겐 골프 등이 대표적이다.
차를 사는 고객은 이런 모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원하는 ‘옵션’을 선택해 왔다. 필요하다면 추가 비용을 내면서 원하는 색상과 기능, 인테리어를 고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차는 자연스레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과 짐칸으로 정형화된 평면을 보여줘 왔다. 가장 대중적인 공간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차 산업의 문법을 바꾸고 있는 전기차는 이처럼 획일적으로 생산되던 자동차의 모습도 바꿔 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은 바로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다.
PBV는 운전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전통적인 차와 다르게 사용 목적을 중심으로 설계된 차를 말한다. PBV에서는 운전자 공간 외에는 짐칸만 필요한 차라면 조수석을 떼어내고 짐칸을 넓히는 식의 맞춤형 설계가 자유롭게 이뤄진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자유롭게 실내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차라고 할 수 있다. 대용량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까는, 이른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 전기차의 대세가 된 상황. 구동을 위해 필요한 부품과 실내 공간을 완전히 구분할 수 있는 차량 설계가 맞춤형 차의 등장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PBV가 우선 노리는 시장은 상업용 차량이다. 각 기업의 요구에 최적화된 짐칸을 갖춘 물류·운송용 트럭이 대표적이다. 대형 물류 기업이 수백, 수천 대씩의 PBV를 주문하고 나선다면 기존의 중·소형 상용차는 자연스레 PBV로 대체될 수 있다. 차량 호출 서비스에 쓰이는 차량 역시 탑승 인원과 특성을 감안해 서로 다르게 설계한 PBV로 바뀔 수 있다.
차에 대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는 PBV가 상업용 차량뿐만 아니라 승용 모델로 확산될 가능성도 키우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기아가 출시한 파생형 PBV ‘니로 플러스’는 기존의 니로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택시용, 캠핑용 차로 설계됐다. 택시용 모델의 경우 내비게이션에 택시미터기와 운행기록계 등이 결합된 ‘올인원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특화 기능이다. 캠핑용 차에서는 짐칸을 줄여 실내 공간을 넓히고 전기 콘센트를 제공한다.
PBV가 그리는 또 다른 미래는 자율주행 기술과의 결합이다. 운전석까지 사라져도 된다면 더 넓어진 공간에서 운전 대신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차를 만들 수 있다. 차가 움직이는 회의실이나 병원, 심지어 호텔이나 영화관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상상이다. 차를 모델명 대신 어떤 쓰임인지로 구분하는 시대가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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