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은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은 친환경 에너지’로 공식화된 날이다.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녹색분류체계’란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이다.
그런데 정작 이를 발표한 환경부 내부는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다.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선언하기가 불편하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이 태양광보다도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핵폐기물, 방사능 누출 사고 위험도 무시 못 한다”고 했다. 사실상 원전 확대를 선언한 것이 부처 의지는 아니라는 하소연으로 들렸다.
지난해 12월 환경부가 첫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했을 당시 원전은 제외됐다.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기류가 변했다. 환경부는 유럽연합(EU) 등 국제기준을 참고하겠다고 선언했고, 유럽의회가 7월 원전을 자국 택소노미에 넣자 환경부도 지난달 20일 ‘원전=친환경’을 공표한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날 “원전은 기후변화를 막을 재생에너지 전환을 늦춘다”고 비판했다. 특히 “K택소노미는 EU 기준에 미치지 못해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원전 확대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EU 택소노미’를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EU 택소노미는 어떨까? 원전은 ‘과도기적’ 에너지이며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제한적 사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EU 또한 2020년 6월 택소노미를 처음 발표했을 때 원전은 포함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지난해부터. EU는 ‘2050년 탄소 순배출량 제로(0)’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전체 소비 에너지의 22%(2020년 기준)까지 높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바람이 충분히 불지 않아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전기료가 30% 이상 폭등했다.
유럽 천연가스 사용량의 3분의 1 이상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자국 제재에 나선 EU에 공급을 수시로 중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온 위기감이 EU가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 속내다.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궤도에 오르면 원전은 다시 축소할 수 있다는 게 EU 입장이다.
우리 현실도 다르지 않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7.4%(2020년 기준)에 그친다. 에너지 수급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 원전을 무조건 확대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반감기가 수십만 년인 방사성폐기물 포화가 임박한 상태다. 폐연료봉은 1867만 개로, 2031년부터는 순차적으로 포화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원전 얘기만 나오면 ‘진영논리’가 앞선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진보 성향 응답자의 90%는 원전 친환경 에너지 공식화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 성향 응답자는 92%가 ‘동의한다’고 밝혔다. 전 정부의 탈원전 일변도 정책으로 이미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번 정부가 맹목적인 친원전 정책에 치중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안정적 에너지 수급체계와 기후변화를 막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균형이 절실하다. 에너지, 이성으로 접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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