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윤성(‘범죄도시’), 황동혁(‘오징어게임’), 김한민(‘한산’)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 명이 국회에 모였다.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등 국제 영화상을 석권하고 있는데도 정작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에게는 단 한 푼의 저작권료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범죄도시’(2017년 개봉)의 강 감독은 “외국에서 우리 작품이 상영돼도, 국내법이 없기 때문에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올해 흥행작인 ‘범죄도시 2’에서 기획을 맡았다.》
―국내법이 없어 못 받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유럽과 남미에는, 예를 들어 방송사가 ‘범죄도시’를 틀면 작가와 감독 등 창작자에게 수익의 일부(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는 법이 있어요.”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려면, 우리도 국내에서 방송한 외국 작품에 대해 줘야 해요. 자신들은 받을 수 없는 곳에 저작권료를 보내면 불법 송금으로 처벌하는 나라도 있거든요.”
―주는 법이 없어 못 받는다는 거군요.
“저작권 시장에 아예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는 거죠. 오죽하면 외국에서 ‘돈은 쌓이고 있는데, 주고 싶어도 한국이 저작권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 못 준다’고 하겠어요.” (쌓이고 있다는 게….) “그 나라 법에 따라 한국 작품 저작권료를 모아 놓고는 있으니까요. 우리가 법만 만들면 가져올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에 가입한 게 1996년인데 왜 아직도 관련 법이 없습니까.) “음악 분야와 달리 영화는 창작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겠다는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저작권법이 영화감독을 사실상 창작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탓도 있고요.”
―영화감독이 왜 창작자가 아닙니까.
“법이 별도의 특약이 없으면 제작사가 모든 저작권을 갖는 것으로 하고 있거든요. 창작자지만 권리는 없는 거죠. 그래서 법으로 창작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해 온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는 뭘 하고 있던 건가요.) “모르겠어요. (법 개정) 얘기를 하면 복잡하다, 어렵다고만 하고….”
―특약이 없는 한 제작사가 모든 저작권을 갖는다는 건 불합리한 것 같은데….
“영화에는 감독 배우 작가 스태프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또 모두 어느 정도 자기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이걸 구분하는 게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제작사가 모든 권리를 갖는 걸로 했는데, 그게 굉장히 오래되다 보니…. 하지만 이제는 카페에서 노래 하나를 틀어도 정당한 보상을 받는 시대니까, 영화도 바꾸자는 거죠.”
―어떻게 바꾸자는 겁니까.
“창작자들이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후에 TV 재방영, 넷플릭스 유튜브 판매 등으로 발생한 부가적인 수익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넣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저작권법상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도 계약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애초에 특약을 맺거나 계약을 잘해서 많이 받으면 안 됩니까.
“창작자들이 (제작사와) 계약을 잘 맺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우리나라 감독들이 평생 평균 몇 편이나 제작사와 제대로 계약을 맺고 찍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10여 편?) “제작사, 투자자가 갖춰진 상업 영화의 경우 평균 5편 이하예요.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30, 40대 감독들은 평균 3편이 되지 않고요. 기회 자체가 없는 감독들에게 계약 관행을 바꾸라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죠. ‘범죄도시’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3년이나 촬영을 못했거든요.”
―왜 투자를 안 한 겁니까.
“형사가 주먹들 잡는 얘기는 너무 뻔하다고….” (투자자를 못 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영화가 엎어지는 거죠. 우리나라 감독은 보통 시나리오도 같이 쓰는데, 원작이 있는 경우도 각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보통 2∼3년. 더 긴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영화가 엎어지면 그 시간이 다 날아가는 거예요.”
―17년 만에 데뷔했다는데 맞습니까.
“서른에 상업영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산됐어요. 그 뒤로 ‘범죄도시’를 찍을 때까지 17년 동안 기회가 없었지요. 30대 때는 그래도 견딜 수 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정말 힘들고 서럽더라고요. 오죽하면 제가 영화를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꿈에 목숨까지 걸지는 말았으면 한다’고 말하겠어요. 한 편 찍을 기회가 절실한 감독들이 보상과 특약 얘기를 한다는 건… 꿈같은 얘기죠.”
―제작사는 저작권법 개정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부분이 오해가 없어야 하는데, 제작사나 투자자 수익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음악 분야는 방송사가 음반을 사용하면 가수나 연주자 등 실연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요. 그것처럼 영화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 방영했을 때 발생한 수익 중 일부를 창작자에게 주자는 거죠. 그러면 투자자나 제작사에 부담도 안 될 테고. 이런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지금은 ‘오징어게임’ ‘수리남’ 등 K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지만 얼마 못 가 영화 산업 기반이 고사될 수 있어요.”
―역대 어느 때보다 잘나가고 있는데 고사라니요.
“우리 영화감독들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이 안 돼요.” (계약금이 그 정도입니까?) “상업 영화의 경우 신인급 감독이 한 5000만 원 정도 받아요. 그런데 대체로 계약할 때 일부 주고, 투자가 이뤄지면 나머지를 줘요. 투자자를 못 찾으면… 나머지 돈은 없는 거죠. 엎어지는 영화가 많다고 했잖아요? 오죽하면 감독조합에서 실태조사를 해보니 감독이 셋 중 하나(30.2%)가 작년에 작품으로 번 돈이 0원이겠어요.”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이 투잡, 스리잡을 뛰고 있어요. 당연히 창작할 시간과 에너지가 줄지요.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면 새로운 인재는 들어오지 않고, 기존 인재들은 해외로 빠져나갈 테고요. 이대로라면 지금의 화려한 성과도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들은 그래도 괜찮아요. 문제는 후배·신인 감독들이죠.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자기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적더라도 꾸준한 수입이 생긴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딱 한 마디 했던 아역배우는 25년째 출연료를 받고 있다던데요.
“타이타닉이 1997년에 개봉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요즘은 그래도 정산하면서 (흥행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있긴 한데 개봉 후 몇 번만 정산한다 또는 개봉 뒤 2, 3년까지만 준다 이런 식이에요. 사실 평생 권리를 줘야 되거든요. 음악은 사후 70년까지 권리를 인정해 주잖아요. 명절 때마다 방송사에서 그렇게 틀어서 돈을 벌었으면 정당한 보상은 당연한 건데….”
※5세 때 타이타닉에 출연했던 리스 톰프슨(30)은 극중 이름도 없었고, 대사는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딱 한 마디였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재상영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분기별로 200∼300달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감독 계약금은 어떻게 정합니까.
“대체로 제작사에서 전에 계약했던 곳에 ‘그때 얼마 줬어?’ 하고 물어서 정하지요. 상업영화 신인감독이 5000만 원 정도라고 해도 이게 시나리오 작업에 2년 정도 걸리니까 결코 많은 게 아니에요.” (너무 짠데요.) “투자자들도 다 이 분야에 오래 있던,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라 갑자기 팍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분들이 알고 있는 통상적인 가격이 있거든요.” (‘범죄도시’도 가능성을 못 알아봤다면서요.) “하하하. 시나리오, 연출, 컴퓨터그래픽 등 다 정해진 선이 있어서 내 것만 올려달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영화 시장은 늘 돈이 모자라거든요.”
―순제작비만 200억, 300억 원인 작품도 많은데 늘 돈이 없다니요.
“2억 원짜리 영화도 투자자를 찾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에요. ‘제작비 200억 원’ 이러면 마치 아낌없이 돈을 퍼부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400억, 500억 원 들어갈 걸 깎고 또 깎고 줄여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여유가 없지요. 화려해 보이지만 그림자도 짙은 게 우리 영화계 현실이에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