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였다면 2일, 비 오는 철원의 밤에 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내 몸에 침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나를 방 안에 가두었다. 일상은 파괴됐고, 앞으로의 일주일은 지워졌다. 그저 방 안에 누워 철원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지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영상으로만 확인했다. 10월 1일과 2일, 양일간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평화와 음악을 내세워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란 구호를 외쳤다.
그 구호처럼 윤수일 밴드가 ‘아파트’와 ‘아름다워’를 부를 때 세대 간 경계나 선은 없었다. 그 대신 춤과 합창이 함께했다.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불렀고 이에 화답하듯 윤수일은 존 레넌의 ‘Imagine’을 부르며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고, 세상은 하나 되어 살아갈 것”이라고 노래했다. 윤수일 밴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노래하는 영상이 여럿 올라왔지만 그 가운데서 나를 가장 사로잡은 건 한영애의 ‘조율’이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노래였지만 한동안 이 노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잊고 살았을지 모른다.
‘조율’은 한영애 3집에 수록된 곡으로 신형원의 ‘개똥벌레’와 ‘터’, 서유석의 ‘홀로아리랑’ 등을 만든 작곡가 한돌이 만든 노래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많은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등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노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한영애의 라이브 앨범 ‘아·우·성(我·友·聲)’에 담긴 버전이다. 송홍섭을 비롯해 신대철 신윤철 형제, 배수연 등 명연주자들과 함께한 이 실황에서 한영애는 실로 영매 같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잠자는 하늘님”과 청중을 연결시켜 주었다. 이 라이브 버전을 듣고 나면 정말로 마음이 조율된 것만 같다.
작곡가 한돌은 저서 ‘늦었지만 늦지 않았어’에서 ‘조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연주하기 전에 음을 맞추는 것이 조율이라면 나사를 조이는 일도 조율이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 것도 조율이고,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망설이는 일도 조율”이라고. 그는 노래 ‘조율’에서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라며 커다란 의미의 조율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일상이 하나의 세계이고 그 행위가 모여 커다란 의미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상이 깨져버린 내게 ‘조율’의 영상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거대한 담론도 개인의 일상보다 우선일 수 없다. 개인의 일상보다 위대한 건 없다. 철원 그 먼 곳까지 가서 선을 긋지 않고 함께 춤을 추며 비를 맞으면서도 음악을 즐긴 이들을 생각해본다. 철원 그 먼 곳에서 새로운 음악 축제를 꿈꾸며 기획한 이들을 생각한다. 한영애의 ‘조율’이 들리던 그 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빛나는 일상을 즐겼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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