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OPEC+)가 대규모 감산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가 유가가 크게 요동쳤다. OPEC플러스 회동을 앞두고 감산 규모가 하루 20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는 외신의 예측 보도까지 나오면서 시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감산이 현실화하면 배럴당 80달러대에 진입했던 유가가 다시 100달러 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OPEC플러스의 감산 논의는 미국의 잇단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이로 인한 유가 하락을 막으려는 산유국들의 대응 차원에서 나왔다. ‘킹 달러’가 가져올 글로벌 경기 악화와 석유 수요 감소 등에 대비해 생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달러 가치를 높이는 미국과 이에 맞서 유가를 방어하려는 산유국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다는 점도 국제사회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에너지를 무기화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우디가 가세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전쟁은 더 심각해질 조짐이다.
석유와 달러 간 충돌은 미중 신냉전과 자국 우선주의 강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구조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기축 통화국 대 산유국 간 ‘갑들의 전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인 셈이다. 미국은 자국 물가를 잡겠다며 내년까지 수차례 더 금리 인상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맞서 전 세계가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설령 이번 고비를 넘기더라도 산유국들의 감산 움직임은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다. OPEC플러스와 별개로 사우디의 단독 감산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수입량이 많은 국가들은 고환율과 고유가의 양쪽 측면 모두에서 충격이 불가피하다. 올해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치인 48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요행을 바랄 곳은 없다. 원유 감산 같은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채 ‘10월 물가 정점론’을 언급했던 안일한 자세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섣부른 낙관론을 거두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한 모든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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