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물가안정목표제에 확고한 의지
인플레발 고금리 시대 장기화 불가피
흩어진 국력 모아 실질 대책 세워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인상)을 단행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달러 대비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 치웠고, 한국 원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가 줄줄이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했다. 실물경기도 본격적으로 얼어붙고 있다. 시장이 이제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준은 이번에 금리를 인상하며 2%로 책정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유난히 강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이 2% 이하로 확실히 떨어질 때까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2% 달성이 내년에도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보탰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솔직하고 원칙에도 충실한 입장 표명은 없다. 게다가 싸움이 길어질 것이라고까지 하니 시장에 말 그대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 것이다.
늦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타기팅’(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행동은 정도(正道)를 밟는 것이다. 1970년대의 인플레발(發) 경제위기 이후 반세기 동안 축적한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 바로 물가상승률을 최우선 달성 목표로 삼는 통화정책이다. 한국은행도 ‘한국은행법’에 따라 2%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설정해 놓고 있다. 이 정책이 반세기 만에 제대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이야말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제대로 정책을 펴야 할 때다. 긴축 골든타임을 놓친 미국에선 고(高)인플레가 이미 임금과 월세에까지 번진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가격이 그렇게 올랐는데도 올 7월에 와서야 집값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최근까지도 미국 경기가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단 뜻이다.
인플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인플레란 병이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치료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근래 파월 의장을 비롯한 주요 연준 인사들이 쏟아내는 강경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다. 인플레가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데 목표치는 2%밖에 되지 않으니 고금리가 뉴노멀이란 말이 나온다. 이렇게 집요한 긴축이 필요한 이유 또한 1970년대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통화 당국들은 인플레와 실업률 수치에 따라 그때그때 긴축과 완화를 반복하는 ‘스톱앤드고(stop-and-go)’ 정책을 폈는데, 이런 근시안적 대응이 인플레와 실업률 둘 다 장기간 놓치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긴축이 인플레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려서다. 이후 인플레에 집중하는 인플레 타기팅이 등장했다. 경기 둔화를 먼저 감내해야 중장기적으로 인플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이 정도를 걷기 시작한 반면 여전히 헤매는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종가(宗家)’ 영국이다. 지지율이 급락한 집권 보수당이 새로 당수 겸 총리를 뽑았는데 이 신임 총리가 뽑히자마자 역대급 감세 정책을 쏟아냈다. 재정 긴축 없는 감세는 돈 풀기와 다름없다. 파운드화는 폭락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경고를 날렸다. 1970년대 구제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결국 보수당 정부는 감세안을 일부 철회하고 말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정부와 국가 신용도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당은 나라를 극도의 혼란과 분열에 빠뜨린 브렉시트 과정을 거치며 기회주의자와 포퓰리스트가 득세하는 3류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도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좋건 싫건 미국을 쫓아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이란 한 배를 탄 이상 미국의 인플레는 곧 한국의 인플레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원화 가치가 하락해 해외에서 발생한 인플레가 고스란히 수입된다. 최근 파운드화 폭락 사태가 여실히 증명했듯 이번 위기는 정부가 돈을 풀어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임시방편적 시장 개입과 재정 지출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벌써 높다고 난리지만 금리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며 고금리 시대는 장기화될 것이다. 인플레도 잡고 불황도 피해 가는 줄타기란 없다. 남의 나라 탓할 여유도 없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적 호흡으로 차분하게 뉴노멀에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이럴 때 쓰려고 국력을 쌓고 시장을 키우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것이다.
지금 한국만 어려운 게 아니다. 따라서 잘만 대응하면 위기를 충분히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흩어진 국력을 한데 모으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국가 리더들부터 신중하고 일관된 언행으로 국민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심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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