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죽인다고 한 효종의 최후[이상곤의 실록한의학]〈127〉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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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효종 재위 3년 10월,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의 “죽인다”는 막말에 대해 날을 세워 비판한다. 조선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찬관 이척연은 “지난번 경연 자리에서 ‘죽인다(誅殺)’는 말씀까지 하셨다고 하니 신은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라며 왕의 과격한 언사에 대해 따졌다. 5일 후 승지 홍명하도 다시 이 일을 거론했다. “태산처럼 위압하고 천둥처럼 진노하시며 지난번 탑전(榻前)에서는 또한 ‘죽인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경연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경전을 읽으며 현실의 구체적 사안을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지혜와 경륜을 배우는 자리다. 교양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리에서 임금이 “죽이겠다”는 말을 했으니 신하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은 불보다 자명한 일.

효종의 불같은 성품에 대한 신하들의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다. 재위 5년 사간원 박승휴는 직격탄을 날린다. “전하는 덕이 작아 사욕을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성을 내어 거조가 온당하지 못하며, 신하를 믿지 않으시어 정의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신하가 군주의 자질을 논하며 이토록 과격한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조반정 이후 신권이 군권을 과도하게 압도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효종은 북벌을 추진하면서 숭무(崇武)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신하들과 사사건건 맞섰다. 자신의 의중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자 신하들에 대한 효종의 불만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개인적 건강 문제도 효종이 마음을 못 다스리는 이유가 됐다. 효종은 즉위년부터 소갈병(당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위년 2월 황금탕을 필두로 양혈청화탕을 48회에 걸쳐 처방받았다. 청심연자음도 자주 복용했는데, 이런 처방들은 동의보감의 소갈병 치료 처방들이다. 동의보감은 소갈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심장이 약해 열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지 못하며 가슴속이 달아올라서 번조(煩燥) 증세가 나타나고 목이 말라 물을 자주 마시며 소변이 자주 마렵다.”

효종은 소갈병 치료에 연뿌리즙, 오미자, 맥문동, 천화분, 인삼 등 전통적 추천 약물 중 연꽃의 열매인 연자죽과 청심연자음 처방을 즐겨 썼다.

효종은 결국 소갈병의 합병증인 종기로 인해 사망한다. 동의보감은 “소갈병의 끝에 종기가 생긴다”라고 경고했는데, 실제 효종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효종은 재위 10년 만에 뇌저(腦疽)라 불리는 머리의 작은 종기를 치료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경솔하게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어의 유후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또 다른 어의였던 신가귀가 “화농 상태의 종기를 그냥 놓아 둘 수는 없다”며 침을 놓은 게 화근이 됐다. 신가귀의 사혈법이 과다출혈로 이어지면서 불귀의 객이 된 것.

성리학은 민생과 실천보다는 인간 본질의 탐구와 도덕적 관점에 집중한 학문이다. 북벌론이라는 국가 경영의 큰 문제를 제쳐두고 임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논쟁을 이어간 조선은 결국 효종도 잃고 국력도 점차 약해져 갔다.

#효종#경연#죽인다#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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