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은 여러모로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집권 여당의 세력 지형을 가늠할 만한 시사점이 드러나서다. 무엇보다 친윤 핵심인 권성동이 주도한 ‘주호영 추대론’ 득표율이 겨우 60%에 그친 것이 충격이었다. 상대가 민주당 계열로 지난해 갓 입당한 이용호여서 여파는 더욱 컸다. 주호영 추대가 윤석열 대통령의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차가 확 좁혀진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권성동과 서먹해진 장제원과 가까운 의원들이 이용호 카드를 선택했다는 관측도 있다. 이용호가 장제원이 주도한 공부모임 ‘민들레’ 간사를 맡고 있어서다. 실제로 권성동과 장제원은 대통령실장 거취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여부 등을 놓고 이견을 보였다. ‘윤핵관’은 물론 윤 대통령 리더십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요인들이 맞물려 ‘이용호 40%’가 됐을 것이다.
정치권 선거에선 의원들만 상대하는 원내대표 경선 결과 예측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의원들의 속내를 알기 어려워서다. 우선 출마한 후보들과 의원들이 물밑에서 흔히 벌이는 이면 협상은 복잡하다. 의원들이 누구보다 여론의 ‘촉’에 가장 민감한 것도 중요한 변수다. 이번 결과를 놓고 당심이 윤심(尹心)에 보낸 경고라고 보는 이유다.
30년 가까운 검사 이력이 전부인 윤 대통령은 누구보다 계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정치적 부채도 없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부채가 없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고기와 물 신세와 마찬가지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여당의 뒷받침이 없으면 대통령 정치는 구현될 수 없다. 피해 갈 수 없는 현실 정치의 철칙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인정한 법원 결정으로 여권을 갈라놓은 이준석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내년 2월쯤 당 대표를 새로 뽑는 전당대회 등 정치 일정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관건은 윤 대통령 지지율이다. 지지율이 반등의 기미 없이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내에서 윤 대통령 리더십에 도전하는 제2, 제3의 이준석 사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총선일이 임박할수록 의원들의 심경은 더 복잡해지지 않을까.
최근 단행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은 지지율 만회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 때문에 윤핵관과 가까운 참모들 상당수가 임명된 지 몇 개월도 안 돼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런 인적 쇄신으로 윤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 그룹을 통한 ‘대리 통치’ 시스템은 사실상 빛이 바랬다. 이제부터 윤 대통령은 그 측근 그룹의 공백을 메워 나갈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당 의원들부터 폭넓게 만나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집권 여당은 흔히 ‘대통령당’이라고 부른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국정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여당은 이를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윤석열당’에선 모두가 친윤(親尹)이라는 주장은 대통령 리더십을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주문이 아니다.
여당도 포용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 운운할 순 없을 것이다. 여당도 다양한 경로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용호 40%’가 여권에 던진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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