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편성된 기초연금 예산은 18조5304억 원이다. 빈곤층 사회안전망의 핵심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16조4059억 원)보다도 많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연금액이 4.7% 인상된 측면도 있지만 수급자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만 65세 인구 중 소득 하위 70%에 속한 628만 명이 매달 30만8000원을 받는데, 내년엔 665만 명이 32만2000원을 수령한다.
그나마 18조 원대 예산은 예외 조항이 있어 줄어든 규모다. 현재 소득 상위 30%의 노인은 아예 배제하고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으면 20%를 감액한다. 또 기초생활보장 급여와 연계해 생계급여를 받는 고령자에겐 사실상 기초연금을 주지 않고, 국민연금을 많이 받아도 최대 절반을 삭감한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국회 대표 연설에서 ‘기초연금을 월 40만 원으로 올려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며 입법 추진을 선언했다. 지난주 대한노인회중앙회를 방문해서 “부부가 같이 살면 기초연금을 깎는데 패륜 예산에 가깝다”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관련 법안을 ‘7대 민생법안’에 포함시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태세다.
그러자 국민의힘도 “기초연금을 40만 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기초연금 40만 원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라며 ‘원조’를 자처했다. 야당의 기초연금 확대법을 두고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며 비판하던 게 얼마 전이다. 하지만 대선 공약을 뒤집는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노인 지지층 이탈이 우려되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올 4월 처음 900만 명을 돌파했고 2024년 1000만 명을 넘어선다니 고령층 민심을 의식한 여야의 행태가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점에서 고령층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기초연금은 연금으로 불리지만 국민연금과 달리 전액 세금으로 운영된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2030년 37조 원, 2050년이면 120조 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게 보건사회연구원의 추계다. 노인 70%에게 40만 원을 지급하면 2030년 49조3000억 원, 2050년 160조 원을 투입해야 한다. 민주당 주장대로 노인 전체로 확대하고 각종 감액 규정을 없앤다면 재정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여야 모두 재원 마련 방안엔 입을 닫고 있다. 나라 곳간은 뒷전인 채 노인 표를 잡으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속에 기초연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10만 원씩 점프했다. 2008년 월 10만 원으로 출발한 지 15년 만에 40만 원이 될 상황에 놓였다. OECD가 10년째 “재정 부담을 낮추고 저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선별 지급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이번에도 여야 모두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는 공적연금 개혁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노인 빈곤 해소라는 본래 취지를 되살려 기초연금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 표심만 노린 여야의 퍼주기 경쟁은 재정도, 복지도 모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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