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헤미안[이은화의 미술시간]〈236〉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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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개와 함께 있는 여자들’, 1923년.
마리 로랑생 ‘개와 함께 있는 여자들’, 1923년.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파블로 피카소의 몽마르트르 작업실은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집합소였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마리 로랑생도 그중에 있었다. 우리에겐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계에서 독자적 화풍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극소수의 여성 중 한 명이다.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로랑생은 도자기 공장에서 도기화를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07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피카소의 소개로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으나 5년 만에 헤어졌다. 독일 귀족과 결혼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몇 년간 망명 생활을 떠났다.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혼하고 1921년 파리로 돌아와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1920년대와 30년대 로랑생은 최전성기를 누리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입체파와 야수파에 영향은 받았지만 따라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여성과 동물이 등장하는 파스텔 색상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이 그림은 로랑생이 추구했던 평화로운 여성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검은 눈동자를 가진 두 여자가 풀밭 위에 앉아 있다. 커튼 때문에 연극 무대 같기도 하다. 분홍치마를 입은 오른쪽 여성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고, 푸른 드레스를 입은 왼쪽 여자는 먼 데를 응시한다. 둘 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하지만 평온해 보인다. 가운데 회색 개가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이들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낙원에 온 듯하다.

로랑생이 그린 평화의 세계에 남자는 없다. 여성과 동물, 음악만 있을 뿐. 하기야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도, 전쟁을 일으킨 것도 남자라 여겼을 터다. 실제로도 로랑생은 여성을 사랑했고 여성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사생아이자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여성 동성애를 묘사한 작품을 당당히 발표했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산 진정한 보헤미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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