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해, 연임에 실패했다. 아시아태평양 그룹에 할당된 4개 이사국 자리를 놓고 치러진 선거에서 123표를 얻어 5위에 그쳤다.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2006년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된 이후 처음이다. 주요 인권지수 순위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같은 나라에도 뒤졌다니 충격적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유엔의 3대 핵심 기구 중 하나로 꼽히는 핵심 위원회다. 그런 국제기구의 이사국 자리를 놓치면서 한국은 국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중요한 기회들을 상실하게 됐다. 북한인권결의안 등 한반도 관련 논의나 표결에도 참여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국이 2019년부터 4차례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는 등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후보국 지위를 약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적으로도 대북전단금지법을 시행하고 언론중재법안을 밀어붙이다가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비판받았다.
치열한 국제기구 선거전에 ‘선택과 집중’ 전략 없이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도 패인으로 지목된다. 외교부가 한국의 입후보를 결정해 뛰어든 올해 국제기구 선거만 14개다. 단 2표를 얻으며 참패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 등에 매달리느라 예산 낭비는 물론 다른 핵심 선거전에 투입할 여력까지 조기 소진했다. 주유엔대표부는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유엔인권이사회 선거의 낙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니 판세를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이번 결과는 자유와 인권을 앞세운 정부의 ‘가치 외교’ 추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신냉전의 구도 속 국제정세의 분열, 선진국 중심의 인권정책에 반발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견제도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신구(新舊) 권력이 ‘네 탓’ 공방이나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는 유엔 분담금 기여도에서 세계 9위인 한국이 왜 이런 성적표를 받아들었는지 그 경위와 과정부터 철저히 짚어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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