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조사 “무례한 짓” 격노한 文
한일 안보협력 “친일” 비난하는 李
내편 결집 선동술과 권위주의 좌파 성향
닮은꼴… 한국 야당사의 변종
필자는 대선 때 ‘문재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이름을 변형시켜 조어(造語)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보노라면 ‘문재명’보다 더 효율적인 표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갈수록 닮은꼴 특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몇 개만 나열하면 이렇다. ①내 편 결집 선동 ②시대착오적 역사관·국제관 ③어설프게 알아서 더 과격한 운동권 마인드 ④공사(公私) 구분 결핍….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에 “무례한 짓”이라고 격노했다.
1993년 여름 오후 필자는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과 많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쪽 대법관에서 감사원장으로 변신해 ‘성역 없는 감사’로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던 이 원장의 당시 최대 화두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조사 문제였다.
5공 시절 평화의댐과 6공 시절 차세대전투기사업에 대한 특별감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전직 대통령까지는 건들지 말라는 청와대의 압박과 견제는 갈수록 거세졌다.
이 원장이 고심 끝에 닿은 결론은 단순 명확했다. 오로지 원칙과 법리에 따르겠다는 것. 피감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를 조사하지 않고 최종 감사 결과를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그로부터 3주 가량 후 실제로 감사원은 전, 노 조사를 공식화했다. 건국 이후 처음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정기관의 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감사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 이외에 전임 정권에 대한 보복 의도나, 정치적 계산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후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등 여러 대통령이 조사 대상이 됐는데 문 전 대통령처럼 반응한 이는 없다. 전직 대통령이어도 사정기관의 조사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근 30년간 이어져 왔는데 이번에 깨진 것이다. 법과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기본적 민주주의 소양만 갖추고 있어도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그냥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될 텐데, “무례한 짓”이라고 굳이 공표한 것은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 수사가 옥죄어 오는 상황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극단적 친일”이라고 몰아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일 안보협력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싹이 트고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 이어져온 것임을 몰랐을 리는 없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지지자들 가슴에 불을 질러 결집시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한미일 연합훈련을 지난 7일 대뜸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몰아붙였던 이 대표는 논리가 궁색해지자 사흘 뒤엔 “한반도가 한미일과 북중러 군사동맹체들의 전초기지가 된다”며 마치 먼 미래의 큰 그림을 보고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실제 그런 취지였다면 처음부터 한미일 안보협력이 미칠 장기적 파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하면서 속도조절론, 신중론을 내놓았어야 한다.
물론 북중러 밀착 유발설 자체도 허점이 많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없다고 북중러가 밀착하지 않을까. 세계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체제가 대립하는 구도가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외면하다해서 다른 나라가 높게 평가하고 한국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면 공상이다.
한국은 군사분계선 감청·정찰과 북-중 접경지역 휴민트 등의 정보자산이 많고, 일본은 이지스함 위성 해상초계기 등을 통한 정보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속도와 깊이에 대해서는 신중론 등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친일 반일과는 무관한 이슈다.
이 대표의 친일몰이는 국제정세와 외교안보의 기초도 모르는 무식의 산물이거나, 다 알고도 그랬다면 선동을 통한 정치적 이익을 국익과 안보보다 우선시하는 선동가적 본성의 발현, 둘 중의 하나다. 물론 국익에 대한 책임감 없이 반일 선동으로 지지자를 결집하는 원저작권은 문 정권에게 있다.
문-이 모두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말장난이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한없이 관대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재명식 선동 기법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번에도 하나 있다.
이 대표는 그제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큰데 자위대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을 하는 걸 봤다. 믿기지 않는 발언”이라고 했다.
누가 섣불리 자위대 발언을 했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동명이인인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동북아에 직면한 위협이다. 그 위협을 (막기) 위해 이웃 국가와 힘을 합친다는 건 전혀 이상한 문제가 아니다”는 발언을 갖고 단어를 살짝 비틀어 자극적으로 만드는 기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공사(公私) 구분 의식의 결핍, 자기 편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이 대표 부인의 법인카드 논란과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 옷 논란 등은 과거 진보진영 지도자들 주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문-이 모두 현대사와 경제체제에 대해 80년대 시각이 화석(化石)화된 채 기득권층에 대한 적대감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사회과학과 이념 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도 않고, 몇 권의 이념서적으로 ‘셀프 득도(得道)’를 선언한 이들이 흔히 드러내는 성향이다.
어설퍼서 더 과격한 운동권 마인드의 잔재와, 대중의 적개심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지지세를 결집하는 전술 마인드가 결합한 결과 문재명식 정치는 권위주의 좌파, 좌파민족주의(social nationalism) 성향이 됐고 앞으로 더 그런 성향을 강화해갈 것이다. 남북분단 일제강점이라는 역사·지리적 조건에 따른 민족주의와 평등주의 성향을 결합해 대중을 자극하면 폭발적 에너지를 낼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질들은 한국 야당의 역사·전통과는 거리가 먼 변종이지만 어쨌든 우세종이 됐다. 더 고착화할지, 조영래 김근태 같은 양심과 지성이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다시 올지는 미지수다.
다만 작가 고 최인훈의 비유를 빌리자면 한국사회라는 공룡의 머리는 다양성 다층성 상대성 자율성의 21세기 초급변 글로벌 시대를 정신없이 헤쳐 가는데, 꼬리 쪽에선 여전히 봉건시대, 일제강점기의 뇌구조에 머문 채 “무례한 짓” “친일국방”을 외치고 있고 그런 이들이 한국 야권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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