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탱크가 들이닥쳤다. 중국 지도부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기로 결정하고 군을 투입한 것이다. 이때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성이 탱크 앞을 막아섰다. 이후 그는 ‘탱크맨’으로 불리며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됐다. 30여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베이징 시내의 고가도로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건 남성이 등장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탱크맨에 빗대 그를 ‘브리지(bridge·다리)맨’으로 부르며 응원하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를 비판하려면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2019년 7월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사퇴하라’는 피켓 시위를 벌인 시민운동가 왕메이위는 투옥 2개월여 만에 숨졌다. 시민단체와 유족은 그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시 주석은 물러나라’는 글을 쓴 법학자 쉬즈융은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인 국가권력 전복 혐의가 적용됐다.
▷13일 베이징 쓰퉁차오(四通橋)에는 2장의 현수막이 걸렸다. 한 장에는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시진핑을 파면하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영수(領袖)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남성은 펑짜이저우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해 왔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전했다. 중국 당국은 즉각 인터넷 단속에 나섰다. SNS 위챗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진이나 글을 올린 계정 60만 개가 폐쇄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당 대회를 사흘 앞둔 예민한 시점에 벌어진 돌발 시위에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흉흉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선전시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7월 정저우시에서는 지역 은행들이 부실화되면서 예금을 찾지 못하게 된 3000여 명이 시위를 하다 보안요원들과 충돌했다. 집회를 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중국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1989년 2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덩샤오핑은 “중국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1년 365일 시위만 하면 어떻게 경제 개발을 계속할 것인가”라고 했다. 국민을 통제할 필요가 있고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 톈안먼 시위가 시작됐고 끔찍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장기 집권에 나선 시 주석은 첨단 정보기술(IT)까지 동원해 사회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민심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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