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일이 있어 낯선 동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카카오맵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마찬가지로 ‘먹통’이었다. 커피를 사려 했지만 카카오톡으로 선물 받은 모바일 커피 상품권을 쓸 수 없었다. 카카오톡으로 내려진 회사 업무 지시는 16일 점심 무렵에야 전달됐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로 기자가 겪은 소소한 불편들이다.
데이터센터 화재가 낳은 이번 사태는 국민들의 일상이 디지털 서비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만에 하나 이 같은 일이 정부 서버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대한민국 전자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엔이 발표한 2022년도 유엔 전자정부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93개 회원국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개별 항목 중 ‘온라인서비스 수준’과 ‘통신 기반 환경’은 1, 2위 국가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각종 공문서 발급과 복지 서비스 신청 등 예전에는 주민센터 등에 방문해 처리해야 했던 일 대부분을 요즘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편리성이 고도화될수록 위험도 고도화된다. 재정과 법무, 교육, 보건복지, 고용노동을 비롯해 중앙부처 등 50여 곳의 디지털정부 시스템 1460여 개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운영하는 정부 서버와 스토리지에 담겨 있다. 정부 포털 ‘정부24’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만 1만7327개에 달한다. 정부 서버가 모두 먹통이 되면 이들 시스템과 홈페이지도 쓸 수 없게 된다.
물론 대비는 하고 있다. 정부는 대전과 광주에 정부 서버 백업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요도가 1등급으로 분류된 외교부와 국세청, 경찰청, 특허청 등의 국가시스템은 두 곳의 서버에 구축돼 있고, 실시간으로 같은 자료가 저장된다. 한 서버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다른 서버가 운영하는 재해복구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정부는 두 곳의 서버가 동시에 먹통이 돼도 시스템이 복구될 수 있도록 충남 공주에 세 번째 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 때문에 기관 내부의 업무 시스템과 각종 홈페이지는 대부분 중요도 3, 4등급으로 분류돼 주기적인 백업만 이뤄진다. 추후 복구는 될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먹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전쟁이나 초대형 재난이 정부 서버 먹통 사태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자정부 시스템이 모두 먹통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사이버공격 능력이 날로 고도화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일례로 긴급재난 문자는 이동통신사 통신망을 통해 발송된다. 그런데 정부 시스템이 먹통이 된 후에도 문자 발송 여부와 내용에 대한 승인이 전자결재로 이뤄질 수 있을까? 유사시 정부의 피해복구 지원과 각종 자원 배분은 전자정부 없이도 가능할까?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만의 하나’를 대비하는 건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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