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급락세를 이어가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시장까지 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18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49엔대까지 치솟았다. 엔-달러 환율이 149엔을 넘은 것은 ‘버블 경제’ 후반이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엔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의 가파른 엔화 추락은 주로 미일 간 금리 차에서 기인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3.00∼3.25%까지 끌어올린 데 비해 일본은 사실상의 ‘제로(0)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을 방어하려면 금리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1255조 엔(약 1경2000조 원)에 이르는 국가부채의 막대한 이자비용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처지다. 오랜 침체로 인해 약화된 일본 경제의 체력도 부담이다. 여러 환경을 고려할 때 엔저 흐름을 돌이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엔저 현상의 가속화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시장까지 덩달아 동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킹 달러’ 현상으로 이미 신흥국들로부터의 자금 이탈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엔저에 더해 중국 위안화의 동반 약세 흐름까지 겹치면서 아시아 외환시장 전체로 ‘달러화 대비 통화 약세’ 현상이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만 하더라도 태국 밧화의 약세에서 시작된 위기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원화 가치는 올 초 대비 엔화를 제외한 아시아 다른 어떤 나라의 통화에 비해서도 가파르게 떨어지는 중이다. 원-달러 환율이 연말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원화 가치를 방어할 수출 경쟁력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8월에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18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폭탄’도 째깍거리고 있다.
기록적 엔저가 몰고 올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가 구조적 적자로 전환하는 사태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수출 기업에 대한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신뢰도도 높여야 한다. 막대한 국가부채가 금리와 환율정책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일본의 경험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도 경고했듯이 정치권이 퍼주기 선심정책으로 통화위기를 자초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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