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한두봉]쌀값 안정화, 수요 확대가 근본 해결책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정부의 쌀 의무 매입, 재정 부담에 지속 어려워
선진국들, 곡물 매입보단 수요 확대에 집중
쌀 수요 다양화하고, 소비 촉진책 적극 나서야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 정치권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쌀값은 시장에서 결정되는데 정치적으로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을 두고 논란이다. 2020년 정부는 쌀 목표가격제를 폐지하고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양곡관리법을 개정했다. 쌀 생산량이 평년 대비 3%를 초과하거나 가격이 5% 이상 하락한 경우, 정부의 매입을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으로 도입하였다. 쌀 소비가 주는 상황에서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공급과잉이 계속 악화할 것을 감안한 조치였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쌀 시장격리를 ‘의무사항’으로 전환하는 법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고자 한다.

쌀 가격은 수요와 공급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정치권은 중장기적으로 쌀 수요를 늘릴 생각보다는 단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시장격리에 매달리고 있다. 쌀 수요를 늘리지 않고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공급과잉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재정지출도 증가할 것이다. 소비자가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 쌀값은 추가 세금 때문에 시장 균형가격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국민의 부담이 커지고, 결국 쌀 시장격리 정책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가격 안정을 위해 곡물을 매입하는 시장격리 정책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사이에 실시해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정부 재고와 재정부담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수요확대 정책으로 농산물 가격 안정을 도모했다. 국내 수요를 늘리고, 학교 급식에 점심은 물론 아침 급식을 도입하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식량 지원을 늘리고 식생활교육도 강화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농산물 무역자유화를 추진해 해외 수요도 늘렸다. 선진국들은 만성적인 곡물 공급과잉과 재정부담을 국내와 해외의 수요 확대로 해결했다.

쌀값 안정을 위해 재배면적을 줄이는 방안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앞서 실시한 생산 면적 감축 정책도 모두 실패했다. 농민이 일부 면적을 줄였다 해도 나머지 농지에 집약적으로 농사를 지어 단위당 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논 면적을 줄이기는 매우 어렵다. 몬순기후대에 속해 여름에 장마가 집중되는데, 물을 담수하면서 재배하는 쌀은 몬순기후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다. 논이 갑자기 줄어들면 물 폭탄을 퍼붓는 이상기후와 재난에도 대처하기 어렵다. 식량안보와 국토보전 차원에서도 쌀 소비를 늘려서 논 면적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쌀농사의 기계화율이 99%에 달해 농사짓기가 예전보다 쉬워진 상황에서 공급을 줄이긴 쉽지 않다.

만성적인 쌀 공급과잉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쌀 수요를 다양화하고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특히 쌀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은 건강식으로 쌀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미국 쌀 협회는 지난 30년간 쌀은 소금, 설탕, 지방, 콜레스테롤, 글루텐이 전혀 없는 저항성 전분 식품으로 비만과 성인병을 예방한다고 홍보했다. 미국의 쌀 총 소비량은 1980년 200만 t에서 2020년 약 500만 t으로 2.5배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쌀 수요 확대와 식생활교육과 홍보를 외면하다 보니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 20년 동안 약 40% 감소하였고, 같은 기간 육류 소비는 60% 늘어났다.

쌀 산업의 장기발전대책을 소비 확대와 함께 추진하자. 첫째, 맛있는 쌀을 생산해야 소비가 늘어나 쌀 산업이 발전한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고품질 쌀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고품질 쌀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양곡표시제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식용, 주정용, 가공용별로 쌀 등급을 세분화하고, 밥맛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함량 등의 표시도 의무화하는 데 나서야 한다. 둘째, 미곡종합처리장은 고품질 단일 품종 쌀을 매입하도록 하고, 권역별로 통합하여 규모화, 현대화하자. 정부양곡창고도 저온저장 스마트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시간으로 쌀 수급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양곡관리법 대신 ‘식량 수급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가칭)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전체 식량 수급 계획, 쌀 수요 확대 방안(교육, 홍보 지원, 쌀 급식 지원), 쌀 가공 산업 육성, 식량 유통업과 가공업체에 관한 내용을 여기에 포함해야 한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닌 우리의 혼이 담긴 자산이다. 쌀 소비를 다양화하고 늘려서 귀중한 쌀 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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