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제삼열 씨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윤현희 씨. 부부는 수년 전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영국과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런던 시내를 걷고, 파리 에펠탑에 오르고, 베르사유 궁전도 구경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남산서울타워에 오르거나, 경복궁 가는 데 걸림돌이 됐던 신체적 장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상버스와 지하철 타기가 너무도 쉬웠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건 택시였다. 런던 시내를 걷다 블랙캡이 지나가기에 혹시나 싶어 손을 들었는데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일반 택시였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고도 탑승이 가능했다. 한국에선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 운 좋으면 부른 지 30분 만에 오지만 2∼3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릴 때가 많다. 부부가 서울로 이사한 첫날, 마트에 갈 땐 초저녁이어서인지 금방 오던 콜택시가 집에 가려고 다시 불렀더니 2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결국 부부는 잔뜩 짐을 든 채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 승강장에 빠져가며 한밤중에 귀가했다.
▷시 경계를 넘어 이동할 땐 불편함이 더하다. 어제 동아일보에는 경기 포천에서 의정부를 거쳐 서울 영등포로 가는 장애인 문정길 씨 동행 기사가 실렸다. 자동차로 1시간 1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장애인 콜택시를 탔더니 5시간 8분이 걸렸다. 포천 택시는 포천, 의정부 택시는 의정부를 벗어날 수 없어 택시만 3번 부르고 그럴 때마다 20분∼2시간 20분을 기다렸다. 경기 성남에 사는 전윤선 씨는 서울 용산에서 오후 10시 40분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한 후 갈아타고 기다리느라 다음 날 오전 6시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장애인 콜택시는 중증 장애인 150명당 1대를 확보해야 하는데 경기(112%)와 경남(105%)을 제외한 15개 시도의 확보율은 법적 기준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나은 서울도 85%다. 그렇다고 장애인용 택시를 마냥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장애인이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타는 데 불편함이 없는 나라는 한국보다 장애인용 택시가 오히려 적다고 한다. 장애인도 버스와 지하철을, 휠체어 이용자도 일반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제삼열 윤현희 씨 부부는 유럽여행기 ‘낯선 여행, 떠날 자유’에서 콜택시가 늦게 와 놓쳐버린 기차, 입장할 수 없었던 공연장에 대해 썼다.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가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인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할 수 없다. 정시 도착이 기본인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를 갖기 어렵고, 사교와 문화생활이 여의치 않으니 고립되고 삶의 질도 나빠진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려면 ‘떠날 자유’부터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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