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관광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입니다.” 올해 3월 말 춘천시 의암호 중도에서 열린 레고랜드 준공식에서 최문순 당시 강원지사는 감개 어린 표정으로 축사를 했다. 도지사가 된 첫해 시동이 걸린 레고랜드 사업이 11년의 긴 임기 종료를 3개월여 앞두고 비로소 끝났기 때문이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문을 연 레고랜드는 초등학생 자녀와 부모가 함께 갈 만한 테마파크다.
▷덴마크 조립식 장난감 레고를 테마로 한 이 놀이공원이 이번 주 한국 자본시장을 뒤흔든 나비 효과의 진원지가 됐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출자해 만든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문제였다. GJC는 공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동산 자산 등을 담보로 재작년에 2050억 원어치의 기업어음을 발행했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이 어음을 10여 개 증권사가 샀다.
▷이 기업어음 지급 기일이 지난달 29일이었다. 그런데 7월 취임한 김진태 도지사가 지급을 거절했다. 여기에 더해 강원도는 법원에 GJC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도 밝혔다. 회생 절차를 통해 회사 자산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취지였다. 민주당 소속 최 전 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긴 빚을 국민의힘 소속 새 지사가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떠안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기업어음은 이달 6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급격한 금리 인상, 기업들의 실적 악화 속에서 빌려준 돈이 떼일까 봐 불안해하던 투자자들은 이 소식에 황급히 지갑을 닫았다. 국가와 같은 수준으로 신용등급을 인정받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어음이 부도를 낸 데 쇼크를 받았다. 레고랜드 기업어음을 많이 들고 있거나, 부동산 개발사업 대출이 많은 증권사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말이 돌고 있다. 분양시장이 얼어붙어 자금이 달리는 일부 건설업체들도 덩달아 부도설에 휩싸였다. 강원도는 뒤늦게 “예산을 편성해 내년 1월 29일까지 돈을 갚을 것”이라고 했지만 자본시장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지금 미세한 충격이 막대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살얼음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관계자, 월가의 투자은행 수장, 저명한 경제학자의 자극적인 말 한마디에 각국 주가와 환율이 요동을 친다. 엔-달러 환율 150엔 선이 깨지자 1997년 태국에서 시작돼 한국 등으로 순식간에 번졌던 ‘아시아 외환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 금융시장 참가자와 기업들 모두 최대한 신중히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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