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69〉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2일 03시 00분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하략)




―배한봉(1962∼ )

산에는 절이 있고, 절 안에는 목어가 있다. 커다란 나무 물고기가 산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모양을 보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산에 무슨 물고기인가. 물고기와 부처는 무슨 관계인가. 오래된 물고기 전설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이 목어가 작아지고 둥글게 변하면 우리가 아는 목탁이 된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두드리는 목탁이란 아주 먼 옛날, 먼 바다의 물고기로부터 왔다는 말이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목탁을 보면서 물고기를 떠올리는 우리 앞에 배한봉 시인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한 생각을 제시한다. 그는 물고기로부터 목탁이 아닌 ‘육탁’을 건져낸다. 새벽 어판장,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뭍에 나와 펄떡인다. 온몸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 꼭 몸으로 치는 목탁 같다. 생의 가장 비참한 순간은 가장 괴로운 순간이고 가장 살고 싶은 순간이다. 그때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시인은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그 새벽을 활기찬 시장이라거나 용솟음치는 생명력이라고 표현하지 못한다. 바닥을 치는 온몸의 두드림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에서 물고기를 보았는데, 물고기만 보지 않았다. 시 안에는 비린내 대신 눈물 냄새, 사람 냄새, 진땀 냄새가 가득하다. ‘육탁’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었는데, 그것을 이미 좀 알고 보고 겪은 느낌이 든다. 남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시다.

#육탁#물고기#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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