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패닉 빠진 자금시장, 금융당국 굼뜬 대응이 불안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4일 00시 00분


급등한 금리,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불안감이 감돌던 채권시장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 불똥이 튀면서 기업들의 돈줄이 말라붙고 있다. 자금 조달 문제 때문에 ‘흑자부도’ 기업이 나올 것이란 공포가 커지는데도 금융당국의 대응 속도는 너무 굼뜨고, 뚜렷한 액션 플랜도 제시하지 않아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시장에는 올해 말까지 약 13조 원, 내년 상반기까지 54조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하지만 새 회사채 발행이 멈추면서 만기채 상환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와 신용등급이 같은 한국전력은 지난주 5%대 금리로 자금 4000억 원을 마련하려 했지만 2800억 원 조달에 그쳤다. 최대 재건축 사업인 서울 둔촌주공 아파트는 8000억 원대 ABCP 발행을 시도했지만 투자자를 못 구했다. 은행, 공기업이 발행한 초우량 채권이 부족한 시중 자금을 먼저 쓸어가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자본시장 경색 우려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된 후 계속 제기됐다. 두세 달 전부터는 집값 상승기에 폭증한 2금융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모니터링 강화’ 같은 상투적 대응만 반복할 뿐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강원도가 ABCP 지급을 거부했을 때도 별 반응이 없다가 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나서야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 계획을 내놨다. 그마저도 시장은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정부는 주말인 어제 회의를 열어 채안펀드와 국책은행 회사채 매입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급하게 내놔야 했다.

미국 기준금리는 연말에 4.5%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자금이 미국으로 빨려들면서 국내 자본시장의 돈 가뭄은 심화할 것이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어려움을 겪는 수출 대기업들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무너진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킬 확실한 안정책을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자금시장#패닉#금융당국#굼뜬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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