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있는 카카오메이커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카카오메이커스 대표를 맡고 있던 홍은택 현 카카오 대표를 만나러 갔는데, 커다란 개가 사무실을 활보하고 있었다. 한 직원이 회사에 데려오는 개를 다들 직장 동료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곳은 자유로운 스타트업 분위기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조수용 카카오 전 대표를 만나 그가 기획했던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NHN을 나와 브랜딩 디자인 회사를 세워 간결한 감각을 보여주던 때였다. 그가 2016년 카카오에 합류해 2018년 공동대표에 올랐을 때 ‘조수용 표’ 카카오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337억 원을 챙겨 올해 3월 카카오를 떠났다.
이래저래 ‘카카오 문화’를 보여주는 홍 대표도 조 전 대표도 네이버 전신인 NHN 출신이다. 사실 카카오는 네이버를 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삼성SDS를 다닌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남궁훈 카카오 전 대표와 차렸던 PC방이 한게임의 전신이고, 삼성SDS 동기인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시킨 회사가 NHN이다.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를 접하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네이버는 9년 전 세운 자체 데이터센터를 카카오는 여태껏 왜 못 만든 것일까. 외형 성장의 속도가 늦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소비자들에게는 변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두 회사의 구조적 문제도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가 선장인 항공모함에 비유할 수 있다. 검색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든 서비스가 네이버 검색창 아래 집결해 있다. 의사결정이 빠르기 때문에 통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반면 카카오는 위계구조가 싫어 대기업이나 네이버를 나온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였던 회사다. 더욱이 김범수 창업자의 경영 철학은 “100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카카오란 브랜드로 탄생해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는 ‘100인 CEO’론(論)이다. 하지만 독립국가처럼 목표를 향해 제각각 달리는 카카오 계열사 136곳을 이젠 하나의 ‘카카오’로 부르는 게 맞나 싶다. 카카오 내부에서조차 “각 계열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오니 그랜드 플랜과 투자는 언감생심이었을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 대표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고객이 돌아선다는 걸 깨달았다”, “기본을 돌아보겠다”고 한다. 이번 카카오 사태는 투자를 받아 시장지배사업자가 되기만 하면 엑시트(exit·자금 회수) 할 수 있다는 업계의 기류에 경종을 울렸다.
카카오톡을 내놓은 지 12년 만에 재계 15위의 대기업집단이 된 카카오. 혁신과 도전에 도움이 됐던 철학이 리스크 상황에서는 독이 돼 버린 셈이다. 아낌없는 사랑을 준 국민을 크게 섭섭하게 만든 카카오를 이제 누군가는 큰 틀에서 정비해야 한다. 위기의 파도가 칠 때 업(業)을 세운 초심을 등대 삼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는 바로 창업자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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