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일상까지 파고드는데… 경찰 2년 연속 인력 증원 ‘0’[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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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범죄 못 따라가는 수사 인프라… 전담 인력 증원 요청에도
정부 심사과정서 반영 안되고 장비 예산도 올해보다 38%↓
258곳중 17곳에만 전담팀… 장기간 수사 속도 내기 힘들어
수사권 조정후 檢공조도 차질… 尹“확산前 마약과의 전쟁 절실”

김기윤 사회부 기자
김기윤 사회부 기자
최근 일상 주변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약 범죄에 맞서 검경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약 사범 수가 급증한 데다 유통 경로도 다크웹, 국제우편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과거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투약자와 공급책, 밀수조직, 국제 마약조직 등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인력과 예산 등을 시급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도 미국 마약단속국(DEA)처럼 마약 관련 수사와 첩보 등을 총괄하는 ‘마약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 경찰 마약 수사 인력 예산 “턱없이 부족”
경찰의 마약 범죄 수사 인력은 급증하는 범죄에 대응하기에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만4123명에서 지난해 1만6153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압수된 마약류는 154.6kg에서 1295.7kg으로 8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드러나지 않은 마약 유통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같은 기간 경찰 내 마약 수사 전담 인력은 219명에서 2021년 345명으로 126명(57.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 9월 기준으로도 362명에 그친다. 그나마 인력 증가분 중 일부는 원래 마약 수사를 겸하던 강력수사팀 인력을 빼온 것이라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8년 치안정책연구소의 ‘경찰 마약수사전담팀 업무량 분석’에 따르면 경찰 내 마약전담 수사팀 적정 필요 인력은 당시 기준으로도 692명이었다. 한 일선 마약 수사 경찰관은 “경찰 한 명이 맡게 되는 사건과 비중은 커지는 데 반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전국 258개 경찰서 중 마약수사팀(정원 5명)이 별도로 편제된 곳은 17곳에 불과하다. 마약수사팀이 없는 곳에선 강력수사팀이 마약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수사팀이 병행하는 경우 시간이 오래 걸려 필요한 마약 수사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했다.

경찰청은 마약수사 전담인력을 2019년에 159명, 2020년에 297명 늘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각각 100명, 85명만 늘었다.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216명과 82명 증원을 요청했으나 정부 심사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아 실제 증원 규모는 ‘0명’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통한 마약 거래가 늘고 있어 추적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며 “마약 범죄에 대응하려면 인력 보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마약 수사 장비 예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마약류 범죄 수사 관련 예산 현황’에 따르면 내년도 마약 수사 관련 장비 예산은 1억8700만 원으로 올해(3억300만 원)보다 38.3% 줄었다. 장비에는 간이시약검사 소변 채취 시 쓰는 내(耐)화학 장갑과 마약 탐지기, 마스크 등이 포함된다. 마약 거래에 활용되는 다크웹, 가상자 등을 추적할 노트북컴퓨터 예산도 1억500만 원에서 3100만 원으로 삭감됐다. 경찰 관계자는 “말로는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선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니 전쟁 준비가 안 된 셈”이라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장비 추가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인력이 증원될 경우 예산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마약 감정 인력도 감정 의뢰 건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과수 마약 감정 의뢰 건수는 2017년 5만5805건에서 지난해 7만6559건으로 2만 건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마약 전담 연구원 수는 2017년 14명이었고, 2019년 이후 16명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국과수의 ‘마약류 감정 1건당 처리 기간’은 2017년 6.5일에서 지난해 10일로 늘었다.
○마약 수사 ‘분업화’ 대신 ‘공조 강화’ 필요
마약 수사에는 각 기관 간 공조가 필수적이지만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후 마약 수사가 분업화되며 공조가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사권 조정 전에는 경찰, 관세청 모두 검찰의 지휘를 받으며 연계 수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조정 후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는 ‘마약류 수출입 또는 수출입 목적의 소지·소유 범죄’로 한정됐다. 이후 ‘밀수’는 검찰·관세청이, ‘유통·투약’은 경찰이 나눠 맡는 모양새로 진행됐다.

이 같은 ‘분업화’ 때문에 검찰이 마약 투약 범죄자를 풀어주는 일도 벌어졌다. 올 8월 전주지검은 인천세관과의 공조로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해 태국인 2명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현장에서 적발한 단순 마약 투약자 한 명은 마약 거래나 수출입에 개입한 혐의를 찾지 못해 사건 기록만 경찰로 넘기고 풀어줬다. 단순 투약자는 수사 개시 범위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법무부의 관련 시행령 개정으로 지난달부터 검찰이 마약류 제조·유통 등과 관련한 마약범죄에 대해서도 단속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단순 소지·소유·투약·보관 등은 제외된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 투약 단계에서 실마리를 찾아 밀수 정황까지 추적하는 형태의 마약 수사는 이제 검찰만으론 쉽지 않게 됐다”며 “수사 범위 제한으로 첩보 수집에도 제약이 있다”고 토로했다.

검경의 수사 경쟁 탓에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기관 사이 정보 공유에 폐쇄적인 관행이 남아있다”고 했다.
○“수사력, 정보 모을 컨트롤타워 있어야”
전문가들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선 미국 DEA 같은 종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1973년 설립된 DEA는 밀수 유통 투약 수사를 비롯해 마약 치료, 재활, 국제 협력, 약물 통제 및 예방 정책 등 마약에 관련된 전 분야를 담당한다. 관련 부처 간 협력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도 맡는다. 법무부 산하 ‘국’이지만 직원이 1만 명을 넘는 거대 조직이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마약퇴치연구소 소장)는 “세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까지 아울러 정보를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할 기구가 필요하다”며 “향정신성의약품 오남용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해 대응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 역시 “신종 마약류가 온라인, 다크웹을 통해 퍼지고 있어 이를 통합 대응할 조직이 필요하다”며 “국제적 차원의 마약 범죄 대응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관련 종합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한 마약 범죄가 급증하는 것에 대해 “우리 미래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총리실을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마약류 범죄 예방과 단속, 치료와 재활, 교육과 홍보 등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이 조만간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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