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내년도 사업 계획의 키워드를 ‘위기 관리’와 ‘내실’로 잡았다. 세계 경기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자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사업 규모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래에 기업을 먹여살릴 신(新)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는 지속할 계획이다.”
이는 2012년 10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분이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으면 10년 전 기사가 아니라 요즘 기사로 읽힐 만큼 상황이 비슷하다. 매년 이맘때쯤 재계는 내년도 경영 전략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특히 다가올 2023년 대내외 경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할 것이란 전망이 많아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번 경기 침체는 인플레이션, 공급망 붕괴, 지정학적 리스크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과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충격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장 비용 절감에 나선 기업들이 많다. 연구개발(R&D)과 마케팅, 직원 교육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고,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응이 침체기를 준비하는 최선의 전략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경기 침체기는 성장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며 “경쟁사가 감축과 절감으로 대응할 때 확장을 모색해 경쟁 업체를 따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침체기 때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자가 된 기업으로 삼성을 꼽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전화에 집중하고 해당 제품군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품질 낮은 제품은 침체기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생각에 고품질에 집중한 것”이라며 “삼성은 R&D와 마케팅 지출을 늘리고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했고, 그 결과 해당 제품군에서 누구도 함부로 대적할 수 없는 기업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경영 전략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는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 전략으로 선제적 인수합병(M&A) 기회를 모색하라고 조언했다. R&D 중단, 마케팅 비용 삭감 등의 임시 방편식 비용 절감만으로는 침체기 이후에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과거 경기 침체 시 기업 가치는 20∼30% 정도 떨어졌고, 이때 사들인 기업 투자는 이후에 2∼4배 수익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다가오는 위기 속에서 적극적인 성장 전략을 주문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은 지난달 “최근 불황과 경기 위축 시기가 더 좋은 투자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당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1일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우위직 이환위리(以迂爲直 以患爲利·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듦을 이르는 말)’를 인용하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한국 기업들이 위기 속에서 움츠러들기보다는 성장의 해법을 찾아 더 크게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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