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기고/허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6일 03시 00분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올해 8월 18일 ‘급격한 통화 긴축’을 강조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7월 의사록이 공개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후 달러당 1400원대 환율로 진입하는 데 불과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환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촉발된 1997년 외환위기 경험으로 인해 최근 ‘한국 경제 위기설’이 빈번히 언급되고 있다. 물론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우선 지금의 환율 상승 요인이 1997년 외환위기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때 환율 상승은 당시 우리 경제의 취약한 대외건전성에 기인했다. 1997년 7월 태국 밧화 폭락으로 시작된 위기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대기업의 연쇄 부도, 금융회사 부실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그 결과 1997년 말에는 환율이 달러당 1900원을 넘어섰고 그 대응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소진되며 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반면 현재의 환율 상승은 미국의 통화 긴축 등으로 인한 글로벌 요인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세계 9위 수준의 외환보유액으로 외화유동성은 양호하다는 점, 대외채무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 평균에 비해 낮다는 점 등은 한국 경제의 대외건전성이 굳건함을 방증한다. 이와 함께 지금의 자유변동환율제도가 대외 충격을 환율 변동으로 흡수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의 급격한 환율 상승에 대한 대응으로 한미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미국발 통화 긴축에 따른 글로벌 강달러 상황에서는 통화스와프의 효과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상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음에도 최근 급격한 통화 가치 절하를 경험했던 영국의 사례는 통화스와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영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정책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년도 재정 정책이 긴축적으로 운용되면서 통화 정책과 방향성을 같이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은 정책에 대한 신뢰 확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외건전성 관리를 위해 과거 경제위기 때보다 더 유념해야 할 부분도 있다. 첫째로 최근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인한 경상수지의 악화 가능성이다. 세계 경제가 불안해질 경우 경상수지가 취약한 국가일수록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발생해 대외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다. 둘째로 가계부채 상황이 과거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 악화됐다는 점이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물가와 환율 상승에 대응한 정책금리 인상 여력을 제한함으로써 경제에 부담을 준다. 최근 가계부채의 증가는 고신용·고소득자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당장 경제 전체의 소비 제약과 부실 위험 증가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향후 자산가격이 급락할 경우 대출 부실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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