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볼 수 있는 ‘노란 터널’이 있다. 직접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감흥을 알 수 없는, 은행나무들이 만드는 가을의 터널이다. 하늘도 땅도 모두 노랗다 보니 우주 어딘가로 가는 통로인가 싶을 때도 있다.
우리는 이런 감흥을 오래전부터 느껴 왔지만 유럽인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데다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아 주로 동아시아에서만 자랐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1730년쯤 당시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네덜란드인들이 자기 나라에 처음으로 심었다는데, 동부 독일인들이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문호 괴테 덕분에 유명해졌는데, 특유의 시심(詩心)으로 절절한 연애편지를 썼던 까닭이다.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 내린/이 나뭇잎엔/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어 (중략)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본래 한 몸인가/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
괴테는 두 장의 은행잎을 ‘증거’로 붙여 보내며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다분히 ‘의도’가 넘치는 시구(詩句)로 시를 마무리했지만, 잎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는 지금까지 딱히 결론이 난 적이 없다. 마치 우리 엉덩이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 갑론을박 중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나무엔 애매모호한 게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보통 참나무처럼 잎이 넓으면 활엽수, 소나무처럼 잎이 날카로우면 침엽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은행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활엽수다. 하지만 한동안 침엽수로 분류되었다. 활엽수로 부르는 속씨식물에게 응당 있어야 할 씨방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침엽수일까? 또 다른 학자들은 수정 방식이 침엽수와는 완전히 다르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뭘까? 요즘은 대체로 독립적인 식물로 본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중간 단계라는 것이다.
하긴, 잎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떤가. 침엽수가 아니면 어떻고, 활엽수가 아니면 또 어떤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잘 살면 그만이지.
실제로 은행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공룡이 출현하기 훨씬 전인 2억7000만∼2억8000만 년 전에 생겨나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어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릴 정도다. 물론 그냥저냥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2020년 중국과 미국 연구팀에 의하면, 수령이 600년 된 은행나무와 20년 된 은행나무는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수백 살이 됐는데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고 노화의 기미 역시 거의 없다시피 했다. 웬만해서는 늙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많은 게 이래서인데, 실제로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늙어서 죽은 나무는 없다. 여러 다양한 사건 사고로 죽을 뿐이다. 비결은? 연구 중이다. 아직까지 모른다는 건데, 남모르는 나만의 비결이 있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자연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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