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에 대한 예의[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8일 03시 00분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간병인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 어느 시점에는 가족이 돌봐주는 것도 한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환자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하게 되는데, 최근 들어 좋은 간병인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로 인해 재중 교포의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간병인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효가 강조되는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의 몫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 요인이 변화함에 따라 더 이상 돌봄은 가족 내에서 알아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 되었다. 어느 순간 돌봄 노동은 가족 밖으로 벗어나 시장화되었고, ‘간병인’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직종이 되었다.

가족으로서는 간병인을 구하면서 간병인이 환자를 잘 챙겨줄지, 혹시 안 보는 사이에 약한 환자를 학대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불성실한 간병인을 만나면 안 그래도 힘든 환자가 더 고생한다. 가족은 소중한 환자의 병간호를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당연히 좋은 간병인을 찾고 싶다. 의료진으로서도 좋은 간병인이 환자 옆에 상주하면 좋다. 식사 수발은 물론이고 대소변 처리, 약 챙겨주기, 산책까지 베테랑 간병인이 척척 알아서 챙겨주면 무척 든든하다. 환자도 더 빨리 회복한다. 그래서일까. 좋은 간병인은 환자가 퇴원할 때 아예 환자 집으로 함께 가는 일도 있다. 결국 좋은 간병인은 누군가에게 고용돼 오래 일하니 좋은 간병인 찾기는 더욱 어렵다.

반면 회진을 돌다 보면 자꾸 간병인이 바뀌는 환자가 있다. 그 간병인을 다른 병동에서 만나게 되면 지난번 그 환자와 보호자가 어찌나 무례하던지 도저히 힘들어서 환자를 간호할 수 없었다는 하소연을 종종 듣게 된다. 잘해주고 싶다가도 정이 뚝 떨어지는 보호자가 있다는 말이다.

돌봄이 오랫동안 허드렛일로 취급되며 며느리, 아내, 힘없는 중년 여성에게 전가되었던 탓에 돌봄이 가족 밖으로 나와도 이들에 대한 하대가 여전하다. 간병인처럼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64.6%가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고 심지어 46.8%가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돌봄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여전히 낮아서 그저 잔심부름하는 부엌데기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하대하면서도 소중한 내 가족을 잘 돌보라는 것이다.

결국 나 스스로가 좋은 고용인인지도 한 번쯤은 돌아볼 일이다. 돌봄 노동자가 환자를 학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 역시 돌봄 노동자를 하대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예의는 돌봄 노동자의 몫만은 아니다. 돌봄 노동자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간병인#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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