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대장동 게이트에 주변 인사들이 계속 거론되자 선을 긋는 차원이었다. 대장동 사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유동규에 대해선 “측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장동 일당이 “유동규 말로는 정진상이 넘버1, 김용이 넘버2, 자기가 넘버3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넘버3는 측근급에도 못 들어간 셈이다. 정진상과 김용 정도가 검경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동을 포함한 비리 의혹 수사가 자신을 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일종의 방어선이 아니었나 싶다.
이 대표는 이런 ‘측근’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단호하게 정리했다. 유동규에 대해선 “민간 개발업자들 만나는 걸 알았다면 해임했을 것”이라고 했고, 대장동 사업 실무라인에 있던 김문기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국 출장을 나가서 함께 다닌 사진이 나왔는데도 그랬다. 그 발언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재판에 넘겨졌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정진상, 김용은 이 대표와 각별한 사이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넘버3 유동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넘버2 김용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넘버1 정진상도 출국 금지됐다. 김용은 이재명 캠프의 전국 조직을 챙겨왔고, 정진상은 대선 패배 후에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응을 전담해왔던 ‘그림자’ 실세로 불렸다. 이 대표의 진정한 측근들이 수사 선상에 올랐으니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수사 대응에 거리를 뒀던 이 대표가 “정치가 아니고 야당 탄압”이라며 대여 투쟁에 나선 것도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의 민주당’을 역설했다. 대선 패배 후 3개월 만에 국회의원, 5개월 만에 제1야당의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속도전으로 몇 겹의 방탄막을 두른 것이다. ‘개딸’이라는 강경 지지 세력에, 내후년 총선 공천권은 당분간 민주당을 이 대표를 지키자는 단일대오로 뭉치게 하는 핵심 기제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직격탄을 맞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초토화됐다. 참회하는 차원에서 중앙당사를 매각해 천막당사로 옮겨야 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된 의원 2명을 노무현 정권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야당이 검찰에 자당 의원을 수사 의뢰하는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보수 우파의 쇄신을 내건 ‘뉴 라이트’ 운동도 벌였다. 이런 지난한 작업은 2007년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서 진 이회창은 정계를 은퇴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으로 얼룩진 이회창 시대와 과감히 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의 민주당은 사정이 180도 다르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를 포함한 지루한 법정 공방의 전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야당 탄압’을 외치는 여론전은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민심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싸우면서 쇄신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됐다.
3·9대선은 끝났지만 대선의 포연(砲煙)은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대선 연장전은 2024년 4월 총선이 끝나야 승부가 가려질 것이다. 제1야당 대표 측근들이 연루된 사정정국이 시작된 이상 서로가 물러설 수 없는 치킨 게임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