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가 ‘국민 밉상’이 돼버렸다. 그동안 이런저런 논란 속에 있었지만 이번엔 훨씬 뼈아프다. 한때 시가총액 3위였던 국가대표 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이 구멍가게급이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드러난 카카오의 대응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화재는 워낙 예상을 못 했다” “전체 셧다운에 대비한 훈련은 한 적 없다”는 경영진의 말도 귀를 의심하게 했다. 이번 기회에 철저히 반성하고 바뀌지 않으면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재난 대비 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정부와 정치권도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카카오 때문이다’ ‘플랫폼 독점이 문제다’라며 사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부분까지 규제의 고삐를 죄는 것은 피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 지침’을 연말까지 제정하고, 내년 초 기업결합 심사 기준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플랫폼 독과점의 폐해와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지나치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령 한국전력에서 화재가 나서 전국적으로 전기가 끊어졌는데 시스템 문제를 따져보지 않고 갑자기 ‘왜 한전이 전기를 독점하느냐’고 따지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주창해 온 자율규제 기조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다시 전면 규제로 방향을 트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재난 대비와 직접 관련된 규제라도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카카오, 네이버 등 부가통신사업자를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편입하고 데이터센터 이중화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민간 시설이 중요하다고 해서 주파수 등 국가 자원을 할당받는 기간통신사업자들과 모든 분야에서 똑같이 규제하는 게 맞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재난 대비 보호조치 의무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등 다른 법령과의 중복 규제도 따져봐야 한다. 국내 영세 사업자들의 부담, 해외 사업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검토도 필요하다.
새로운 법을 만들기에 앞서 기존의 재난관리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ISMS-P(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집적정보통신시설 보호 지침’ 등 기존의 관리 지침부터 보완할 필요가 있다. 허점을 드러낸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입주사의 협력체계, 소방서 등 유관 기관과의 공조체계, 데이터센터 화재 진압 매뉴얼 등도 다듬어야 한다. 정부와 업계가 충분한 소통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실질적인 점검 및 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고만 터지면 일단 ‘방지법’부터 만들어 보자는 관성은 피해야 한다. 사회적 공분을 이유로 급하게 만든 법이 오히려 부작용만 가져온 사례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명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이게 다 몸이 허해서 그런 거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해법으로는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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