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기다렸던 축제가 시작도 하기 전에 악몽이 돼버렸다.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길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한꺼번에 몰려든 인파로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해 154명이 숨지고 130명 넘게 다쳤다. 2014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 이후 역대 최대 참사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수학여행길에 오른 고교생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대부분 20, 30대 젊은이들이다. 10대 사망자들도 있다. 지금도 세월호를 떠올리면 어린 학생들을 태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기억에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다시는 세월호를 겪지 않겠다던 다짐에도 또다시 튼튼한 팔다리를 맥없이 늘어뜨린 채 심폐소생술을 받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다. 익숙한 무기력감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혼자 살아 돌아온 젊은 생존자들과 참척(慘慽)을 당한 부모들은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에서 맞붙잡고 통곡하고 있다. “제가 잘못했어요. ○○이 손을 놓쳤어요.” “아니다. 네 잘못 아니다.” 살뜰한 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아버지는 딸이 생일선물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또 본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갚아 나가겠습니다.”
실종 신고 접수 센터가 마련된 서울 한남동 주민센터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자녀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어제 오후까지 4000건 넘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태원에 놀러간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며 어머니가 울먹였다. 경찰서에서 늦둥이 외동딸의 휴대전화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는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도 주저앉았다. 희생자에겐 애도를, 유족에겐 위로를, 실종자 가족들에겐 반가운 생존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대형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은 평소에도 자유롭고 국제적인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 유행 이후 처음으로 거리 두기 없이 핼러윈맞이 대규모 행사가 열리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축제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참사 직전 촬영된 영상에는 다양한 핼러윈 복장을 한 사람들이 폭이 좁은 경사로를 빽빽이 메운 모습이 나온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인근의 클럽 관계자들이 문을 열고 가게 내부로 피신하도록 유도하고, 인근 발코니에 있던 사람들이 인파 속 젊은이를 위로 끌어올리며 대피를 도왔지만 인파 중 일부가 넘어지자 도미노식으로 쓰러졌다. 선 채로 짓눌린 피해자도 있었다. 축제의 거리가 순식간에 죽음의 내리막길이 돼버렸다.
지금은 국가애도기간이다. 모든 정부 부처와 관공서에는 조기가 내걸렸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고 한다. 옳지 않을뿐더러 지금은 사고 수습에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희생자들의 유족 지원과 부상자 치료가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외국인 사망자도 중국 노르웨이 이란 우즈베키스탄인을 포함해 20명이 훌쩍 넘는다. 그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유족에게 인도하는 작업에도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바로 옆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축제 참가자들, 사고 직후 구조대원들 틈에 섞여 피해자들의 심폐소생술에 팔을 걷어붙인 시민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을 치유하는 일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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